조선의 화폐제도

조선의 화폐제도

상공업 활동을 규제하여 거래가 부진하였던 조선에서는 화폐의 보급도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추진되었다. 태종 때에 발행한 저화(楮貨)가 부분적으로 사용되었고, 세종 때에 조선통보(朝鮮通寶), 세조 때에 화살로 겸용할 수 있는 팔방통보(八房通寶)를 발행하여 유통시키고자 하였으나, 상업활동의 부진과 화폐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널리 통용되지 못하고 여전히 미곡과 포목으로써 물물교환식 거래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상공업이 발달하고 화폐에 대한 수요가 커지게 되자 인조 때에 상평통보(常平通寶)라는 동전을 처음으로 주조하였는데, 숙종 때에는 전국적으로 유통되었다.

18세기에는 세금이 금납화되면서 화폐는 1차적 유통수단이 되어 상품유통을 촉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고종 때의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을 위하여 국고가 부족하자, 이를 보충하고자 당백전(當百錢)이란 악화를 발행하여 경제적 혼란을 가져 왔다. 이러한 조선의 불안전한 화폐제도는 갑오개혁에 의해 근대적 은본위제도(銀本位制度)의 확립과 더불어 개선되었으나, 이때를 전후하여 일본의 경제적 침투와 더불어 일본화폐의 횡행으로 통화계에 혼란이 일게 되었다.

카테고리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