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문명

크레타 문명

크노소스궁전 벽화

크노소스궁전 벽화

BC 2000년경에 아마도 중부 유럽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되는 민족이동의 여파를 받아 초기 청동기문명이 붕괴되고, 에게해 주변의 세계는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하는 중기 청동기시대로 들어간다. 크레타섬은 동(東)지중해의 중앙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오리엔트세계, 특히 이집트와의 교류가 있었다. 또한 다른 섬들보다 훨씬 면적이 넓은 데다 평야가 많은 점 등으로 조직적인 문명 성립에 필요한 조건을 구비하였다. 주민은 지중해인종에다 소아시아인이 혼혈된 것으로 추정된다.

크레타 문명 본문 이미지 1

처음에는 동부와 중부에 각각 독립적인 세력이 분립되어 있었는데, BC 2000년경에 크노소스를 중심으로 하여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져, 미노스라 불리는 왕이 섬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정치 ·군사 ·예술 등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또한 동부 지중해의 교역을 거의 독점하게 된 것 같다.

크노소스를 비롯하여 말리아 ·파이스토스 ·자크로스 등에 궁전이 건립되고, 도기(陶器) ·금속기의 제작이 성행하였으며, 작은 조각 ·그림도 발달하였다. BC 1700년경에 필시 대지진이라 생각되는 재난을 당하여 각지의 궁전이 도괴(倒壞)되었으나 곧 보다 큰 대규모의 새 궁전이 재건되어, 그 뒤 약 2세기 동안 크레타문화는 절정기를 이루었다.

특히 수도 크노소스는 인구 8만을 헤아렸으며,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으로서 번영하였다. 크노소스궁전은 경사진 곳에 가운데 마당을 사이에 끼고 수백의 작은 방을 배치한 복잡한 계획에 의하여 건립된 대건축으로, 소위 미궁(迷宮:라비린토스)로서 유명하다. 거기에는 제례 ·공무(公務)를 위한 방, 왕족의 사실(私室) ·공방(工房) ·창고 등이 있는데, 중요한 방은 대부분 선명한 벽화로 장식되고 채광과 배수시설도 세심하게 배려되었다. 다른 지역의 궁전도 대소의 차이는 있으나, 계획 ·장식방법 등에서 크노소스와 공통된 성격임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당시의 종교 및 언어에 대하여는 아직도 불명한 점이 많다. 크레타섬에는 독립된 신전은 없고 또 이것이 신상(神像)이라고 확인될 만한 조상(彫像)도 없다. 왕은 지배자인 동시에 최고의 신관(神官)으로서 신성시되었으나, 아마 그것에는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와 같은 체계화된 신관(神觀)은 존재하지 않은 듯하다. 신앙의 기반을 이룬 것은 일종의 주물숭배(呪物崇拜) 였으며, 신과 비슷한 것으로는 원시적인 지모신(地母神)을 생각할 정도였다.

당시의 문자로는 그림문자(상형문자)와 선(線)문자 A ·B가 있었는데, 선문자 B만이 1953년 영국의 고고학자 M.G.F.벤트리스에 의해 거의 해독되었다. 크레타는 BC 1400년경에 그리스 본토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크노소스를 비롯한 각지의 궁전은 파괴되었으며, 주민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에게문명의 중심은 이후 그리스 본토로 옮겨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