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의 신라

중대의 신라

신라 진덕여왕 때 정권을 주도하였던 진골(眞骨) 출신의 김춘추가 상대등 알천(閼川)의 양보로 왕에 추대되어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하자 성골(聖骨) 출신의 왕계는 진덕여왕으로 끝나고 이로부터 진골출신의 왕계가 비롯되었다. 무열왕은 당나라에 청원하여 나 ·당 연합군을 편성, 백제를 멸망시켰고(660), 문무왕은 백제의 부흥항쟁을 진압하는 한편 역시 당나라에 원군을 청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다(668).

그러나 당나라는 일방적으로 백제의 고토(故土)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두어 자국의 관리와 군대를 주둔시켰고, 신라마저 계림대도독부(鷄林大都督府)라 하고 문무왕을 계림도독에 임명하였으며,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는 평양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두는 등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획책하였다. 신라는 당의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검모잠(劍牟岑)의 고구려 부흥군을 도와 당에 대항하도록 하였고, 또한 고구려의 왕족 안승(安勝) 이하 4,000여 호(戶)의 고구려 유민을 받아들여 금마저(金馬渚:全北 益山)에 보덕국(報德國)을 세우게 하는 등 영토의 잠식투쟁을 하였다.

671년 신라는 백제의 옛 수도 사비성(泗沘省:扶餘)을 빼앗아 당군을 몰아내고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하였다. 675년에는 당의 20만 병력을 매초성(買肖城:仁川) 등지에서 섬멸하고 676년에는 서해를 통하여 소부리주 ·기벌포(伎伐浦:錦江下流)에 쳐들어온 당나라의 설인귀(薛仁貴)부대를 격파하여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하였다. 이로써 백제 멸망 후 16년간 존속하여온 웅진도독부를 축출하게 되었고, 위축된 당나라의 세력은 평양에 설치한 안동도호부도 만주의 요동성(遼東省:遼陽)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리하여 대동강에서 원산만으로 이어지는 선의 이남에 이르는 반도를 통치하게 된 신라는 역사상 최초의 단일 왕국에 의한 통일국가를 이루게 되어 이로부터 통일신라시대가 개막되었다. 통일신라는 3배로 늘어난 영토를 조직적 ·능률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전제왕권의 확립을 위한 지배체제의 정비 및 개편과 새로운 문화창조에 힘썼다.

신문왕은 중앙관부에 예작부(例作府)와 공장부(工匠府)를 설치, 당나라 6전(典) 조직과 비슷한 정무(政務)분담형식의 집사부(執事部) 이하 14관부를 완성하여 일원적 지배체제를 이룩하였다. 지방제도에 있어서는 전국을 9주(州)로 나누어 그 밑에 군(郡) ·현(縣)을 두었으며, 요소에 5소경(小京)을 두어 이곳에는 서울인 경주와 같이 6부제를 실시하고 왕이 때때로 순주(巡駐)하였다.

그리고 지방세력의 억제책으로 상수리(上守吏) 제도를 실시하고 689년에는 녹읍제(祿邑制)를 폐지하였다. 통일신라는 성덕왕(702∼737) 때 극성기(極盛期)를 맞이하였고, 통일 후 120여 년 간은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어 오늘날 안압지 ·임해전 ·포석정 등이 당시 상류사회의 호화로운 한 모습을 전하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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