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올림픽경기대회

제7회 올림픽경기대회

[ The 7th Olympic Games ]

요약 1920년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서 개최된 제7회 하계 올림픽 경기대회.
1920년 안트베르펜 올림픽대회 개회식

1920년 안트베르펜 올림픽대회 개회식

대회기간 1920년 4월 20일∼1920년 9월 12일
개최도시 벨기에 안트베르펜
대회규모 29개국, 선수 2,626명
메달순위 1위 미국, 2위 스웨덴, 3위 영국 (금·은·동 합계)
개최종목 근대5종, 럭비, 레슬링, 복싱, 사격, 사이클, 수영, 승마, 아이스하키, 양궁, 역도, 요트, 육상, 조정, 체조, 축구, 테니스, 펜싱, 폴로, 피겨스케이팅, 하키 등 154개 세부종목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해 1916년으로 예정된 제6회 올림픽 경기대회(베를린)가 무산되고 나서 8년만에 다시 열린 대회로, 1920년 4월 20일부터 9월 12일까지 3개월에 걸쳐 개최되었다. 29개국에서 2,626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올림픽 대회 사상 처음으로 J.쿠베르탱이 고안한 5개 고리를 이은 오륜기가 게양되었으며, 스포츠의 영광과 팀의 명예를 위해 싸울 것을 다짐하는 선수선서식이 있었다. 또 프랑스의 디동 신부가 작성하고 다음대회에서 공식표어로 채택된 올림픽 표어 “보다 빠르게(citius), 보다 높게(altius), 보다 강하게(fortius)”가 소개되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IOC)는 제6회 올림픽 경기대회 무산 후 제7회 대회를 중립국인 벨기에에서 개최할 것을 결의했다. 대회조직위원장은 후일 쿠베르탱에 이어 제3대 IOC 위원장이 된 라투르 백작이 맡았으며, 주최국인 벨기에는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준비를 했다. 각국 선수단에게는 안트베르펜에 소재한 학교를 숙소로 제공했고, 음식도 제공했다. 대회 개막식에는 많은 관중이 몰렸으며, 벨기에의 왕 알베르트가 행사를 연출했다. 벨기에의 적대국인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튀르키예는 초청되지 않은 반면, 제1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신생국인 에스토니아·체코슬라바키아·유고슬라비아가 새로 참가했다.

경기는 22개 종목, 154개 세부종목이 열렸으며, 아이스하키가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제5회 대회에서 제외되었던 복싱·양궁·하키·역도·피겨스케이팅이 추가되었다. ‘달리는 인간기계’라고 불리는 핀란드의 장거리육상선수 P.누르미는 1만m· 1만m단교경주(斷郊競走)에서 우승했으며, 이후 올림픽에 2번 더 참가하여 금메달을 모두 9개나 획득하여 우상이 되었다. 펜싱에서 이탈리아의 N.나디 선수는 5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고, 사격 라이플경기에서 우승한 스웨덴의 요한손 선수는 당시 72세로 사상 최고령자였다. 조정경기에서는 미국해군소속 선수 8명으로 구성된 강팀이 8종목에서 우승했다.

대회 우승은 금메달 41개의 미국이 차지했으며, 스웨덴(금메달 19개)·핀란드(금메달 15개)·영국(금메달 15개)·벨기에(14개)가 그 뒤를 이었다. 전쟁의 참상과 제6회 올림픽 경기대회의 무산 이후 이 평화적인 세계대회의 지속을 걱정한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불식시켰으며, 개회식에서 있었던 ‘인간성을 위한 군중의 기도’와, 오륜기·올림픽표어 채택, 그리고 1921년의 ‘올림픽 헌장’제정과 채택 등 올림픽 경기대회에 관한 많은 개혁이 이루어졌다.

역참조항목

얀 페카, 헤닝 홀스트, 한스 테오도르 노르드비크, 헨리 라르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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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보 누르미동상

파보 누르미동상 핀란드 투르쿠야포리주의 투르쿠. 누르미는 핀란드의 장거리 육상선수로 1920년 안트베르펜 올림픽대회의 1만m, 1만m 크로스컨트리 경주, 1924년 파리 올림픽대회의 1500m, 5000m, 1만m 크로스컨트리 경주,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대회의 1만m 경주 등에서 우승하였다. 1921∼1931년에 14번의 세계기록을 수립하여 '달리는 인간기계'라고 하였다. 출처: cor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