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의 노르망디와 데인로

바이킹의 노르망디와 데인로

바이킹의 무덤

바이킹의 무덤

바이킹은 8세기 말부터 프랑크를 침입하기 시작하나, 카를대제에 의해 격퇴되었다. 대제가 죽은 뒤 센강(江)과 루아르강 하구에 기지를 건설하고, 9세기에는 3차례나 파리를 점령하여 내륙의 여러 도시를 약탈하였다. 루아르강 유역에서는 일찍이 철수하였지만 센강 하류의 식민은 견고하였기 때문에, 911년 프랑크왕 샤를 3세는 바이킹의 수령(首領) 롤로에게 개종(改宗)·신종(臣從)을 조건으로 그들이 점령한 땅을 지배지로 주고 노르망디공(公)으로 봉하였다. 그뒤 이 지방은 급속히 프랑스 문화에 동화되었다.

또한 잉글랜드에의 침입도 8세기 말 7왕국 시대에 시작되어, 9세기에는 잉글랜드 동쪽 해안지대는 데인이라고 불린 바이킹이 지배하였다. 웨식스 왕국의 앨프레드 대왕이 그들을 격파하여 그들의 수장(首長)을 개종시키고 동부에 데인 로(데인人의 법 시행지역)를 인정하는 조약을 맺어 그들의 남하를 저지하였다. 데인의 침입은 그때까지 분립한 7왕국을 결속시켜 웨섹스를 중심으로 한 잉글랜드왕국으로 통일되었으며, 데인에 대한 동화도 진전되었다.

이 무렵 국가를 세운 덴마크왕국의 왕자 쿠누트가 대거 내습하여, 스스로 잉글랜드왕국의 왕위에 올라 데인왕조(1016∼42)를 창시하자, 이 나라는 얼마 동안 북유럽의 해상왕국(海上王國)에 편입되었다. 1066년 노르망디공 윌리엄이 ‘노르만정복’을 감행하여 왕위에 오른 뒤, 잉글랜드왕국은 서유럽의 문화권이 되었다. 아일랜드 침입도 8세기 말에 시작되어, 만섬[島]을 거점으로 각지의 수도원·교회에서 귀금속·재보 등을 마구 약탈하였다.

837년 노르웨이의 투르게이스는 동북부를 공략하고 리페강(江) 하구에다 더블린 기지를 건설, 아일랜드왕이라 자칭하였다. 852년 잉글랜드의 동해안을 지배한 데인인(人)의 오라프 백왕(白王)이 내습하여 더블린왕국을 건설하였는데, 이 왕국은 10세기 중엽까지 번영하였다. 1014년 오쿠니제도의 바이킹 영주 지가드가 아일랜드의 노르만과 호응하여 내습하나, 아일랜드 최대의 부족왕 브라이안 보르우에게 격멸되고 이를 마지막으로 그들의 침입은 끝이 났다. 그러나 그들이 섬의 주변에 건설한 더블린·워터퍼드·코크 등의 항만시는 그뒤 상업·문화의 중심이 되어 번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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