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궁전

동양의 궁전

헤이안신궁

헤이안신궁

인도는 기원전 4∼3세기경에 궁전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1세기 전후에 건설되었다는 탁실라(Taxila)궁전이 있다. 근세에 경영된 왕궁으로 악바르(Akbar) 대제의 파테푸르 시크리(Fatehpusr Sikri)궁전, 샤 자한(Shāh Jahān) 황제의 아그라궁전이 유명하고, 지방에 있는 궁전으로 북부의 괄리오르(Gwālior)궁전 ·다티야(Datiyá)궁전 ·오르차(Orchha)궁전 등이 있다.

중국은 BC 7세기경부터 궁전의 조영이 있었다 하나 진시황(秦始皇)의 궁전들, 그 중에서도 함양궁(咸陽宮)과 아방궁(阿房宮)이 초기 중국의 궁전을 대표한다. 한(漢)나라 장안성(長安城)의 장락궁(長樂宮) ·미앙궁(未央宮) ·건위궁(建韋宮) ·감천궁(甘泉宮)도 그 규모가 대단하였다.

미앙궁에는 전각과 대가 43동, 못이 13개소, 산이 6곳 있었다 한다. 후원인 상림원(上林苑)에는 세계에서 모아들인 온갖 화초와 조수(鳥獸)들을 사육하였다 한다. 수(隋)나라 의 낙양궁(洛陽宮), 당(唐)나라의 장안궁(長安宮)도 유명하다. 그 중 당나라의 궁전은 배치법을 완성시켜 임금이 수조(受朝)하는 구역과 연침(燕寢)의 구역을 분명하게 구분하였다. 그에 따라 완성된 궁전이 대명궁(大明宮)이다.

또 고조(高祖)가 창건한 영안궁(寧安宮), 현종(玄宗)의 흥경궁(興慶宮) 등이 있는데, 이들도 배치에서 좌우가 대칭되는 법식을 따랐다. 송(宋)나라 궁전으로는 북송의 변경(汴京) 궁전이 유명하고, 요(遼)나라와 원(元)나라 궁전은 당나라 이래의 배치법이나 구성에서 벗어나 북방적인 요소를 많이 지녔다.

이 북방적인 요소 중에는 북부 중국의 태반을 차지하고 수백 년간 다스려온 고구려적인 성격도 포함된다. 지난날의 당나라 제도에 따른 전통적 중국식 궁전은 명(明)나라에 의하여 재현된다. 난징[南京]의 고궁(故宮) 터전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 베이징[北京]의 자금성(紫禁城)에서 재현되는데, 이것은 또 청(淸)나라에 계승된다. 남쪽 천안문(天安門)과 오문(午門)을 지나면 왕의 집무실인 태화전(太和殿) 일곽이 된다. 그 북쪽에 건청궁(乾淸宮)이 있고, 동쪽에 태묘(太廟), 서쪽에 태액지(太液池)가 있다.

청나라는 선양[瀋陽]에 먼저 궁궐을 조영한 바 있었으나 자금성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한다. 청나라 역사상 가장 황금기였던 강희(康熙)와 옹정(雍正) 때에는 러허성[熱河省] 청더[承德]에 피서용 산장을 짓고 여름에 머물렀다. 그 규모와 꾸밈에 대하여 박지원(朴趾源)은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잘 묘사하고 있다. 베이징 교외에 이탈리아식(式) 바로크풍(風)의 원명원(圓明園)이 세워지고, 시태후[西太后]가 완서우산[萬壽山]의 쿤밍호[昆明湖]에 궁전 조영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중국 궁전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일본은 백제와 신라의 제도를 받아들여 후지와라궁[藤原宮]을 조영하고 이를 본받아서 헤이조궁[平城宮]을 완성하였는데, 지금의 나라[奈良]에 있다. 이궁(離宮)으로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의 사가[嵯峨] ·도바[鳥羽] 이궁이 있고, 그 이후에 조영된 가쓰라[桂] ·슈가쿠인[修學院] 이궁이 있다. 그 후 바쿠후[幕府] 시대로 접어들어 군웅(群雄)이 할거하면서 곳곳에 성이 이룩되었는데, 후시미성[伏見城] ·니조성[二條城] ·나고야성[名古屋城] ·에도성[江戶城]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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