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의 세가
관동지방 원주시 부론면(富論面) 노림리(老林里)에는 30대까지 계속 거주하는
청주한씨(淸州韓氏) 가문이 있다. 조선 선조(宣祖) 때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지낸
한백겸(韓百謙)은 당시 사회에서 실생활과 거리가 먼 주자학에 반대하여 한국의
자주성을 강조하고, 한국학을 주장한 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이기도 하였다.
그는 기자(箕子)가 중국에서 왔다는 사실(史實)을 부인하고, 또 평양의
정전법(井田法) 유적도 고증적(考證的)으로 믿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학문의
주류를 주자학 일변도에서 실학(實學)으로 이끌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지리학 연구에 남달리 힘을 기울였음은 특기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