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고분

백제의 고분

나주 반남 고분군

나주 반남 고분군

백제의 고분은 수도의 변천에 따라 구분하여 볼 필요가 있다. 백제 초기인 한성(漢城)시대의 무덤양식은, 일반적인 움무덤[토광묘(土壙墓)]에서부터 돌무지무덤[적석총(積石塚)]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무덤 양식이 확인된다. 매장주체부도 나무널[목관(木棺)], 돌덧널[석곽(石槨)], 독널[옹관(甕棺)] 등 다양한 형태가 혼재되어 있다.

초기 백제 지역의 돌무지무덤으로는 흙으로 봉분을 만들고 그 위에 돌을 깔아 만든 무덤[즙석봉토분(葺石封土墳)]도 보이고, 순수하게 돌을 쌓아 분구를 조성한 무덤[무기단식(無基壇式) 적석총]도 확인된다. 서울 석촌동과 방이동 일대에서는 대형의 계단식 돌무지무덤도 남아있는데, 백제 최고 지배층의 무덤으로 파악된다. 특히 석촌동 3호분의 경우는 동서 길이가 약 50m에 달하고, 높이는 4.5m 정도로 초대형의 무덤이다. 초기 백제 지역에서 다양한 무덤 양식이 함께 나타나는 사실은 초기 백제가 다양한 세력 집단이 융합하여 구성된 것과 관련있다.

웅진(熊津)시대가 되면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橫穴式石室墓)]이 대표적인 무덤 양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굴식돌방무덤은 4세기 말에서 5세기 중엽 한성시대에 출현하였고, 웅진시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조영된다. 이전 시기에 다양한 무덤 양식이 혼재했던 것과 달리, 중앙의 무덤 양식이 각 지방으로 확산되는 특징을 보인다.

고구려계통의 돌무지무덤이 없어지고 널길이 달린 돌방무덤이 한성시대에 이어서 계속 만들어지며, 중국계 벽돌무덤이 새로이 만들어진다. 벽돌무덤은 백제시대를 통틀어 공주에 2기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 단면이 터널모양이고 기다란 전돌을 가지고 길이모 또는 작은모쌓기로서 반복하여 만든 것이다.

사비(泗沘)시대의 무덤은 한성·웅진시대에 이어 기본적으로 장방형 돌방이 유행한다. 한편, 전남지방에는 늦게까지 토착적 묘제를 고수하여 특별히 큰 독무덤[甕棺墓]이 유행하였다. 영암(靈岩)·무안(務安)·나주(羅州) 등지에서 발견되는 이 독무덤은 지방 호족(豪族) 또는 마한 잔여세력의 묘제로서 중요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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