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의 연혁

익산시의 연혁

용안향교

용안향교

여산면 원수리 신막마을과 춘포면 쌍정리 등지에서 발굴된 몸돌·찍개 등의 구석기시대 유물, 웅포면 웅포리와 금마면 신용리 등지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주거지, 영등동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의 장방형 주거지와 함열읍 다송리에서 발굴된 돌널무덤(석관묘) 등 선사시대부터 익산 지역에 취락이 형성되었던 유적 및 유물이 확인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 연맹체를 구성하는 건마국(乾馬國)과 감해국(感奚國)·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 등의 영역으로 비정된다. 건마국은 지금의 금마면·왕궁면·삼기면·팔봉동 일대, 감해국은 함라면 일대, 여래비리국은 여산면 일대로 비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시조 온조가 마한을 병합하여 익산 지역에 금마저(金馬渚)와 소력지현(所力只顯)·지량초현(只良肖縣)·감물아현(甘勿阿縣)·알야산현(閼也山縣) 등을 두었다. 무왕(재위 600∼641) 때 익산 지역에 왕궁평성(王宮坪城)을 건설하고 왕실 사찰인 제석사와 호국 사찰인 미륵사를 세웠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668년(문무왕 8) 금마저에 보덕국(報德國)을 세워 고구려 유민인 안승(安勝)을 왕으로 삼았다가 683년(신문왕 3)에 폐하였다. 757년(경덕왕 16) 주·군·현의 명칭과 행정체계를 정비하여 금마저에 금마군(金馬郡)을 두었으며, 소력지현·알야산현을 각각 옥야현(沃野縣)·야산현(野山縣)으로 고쳐 우주현(紆州縣, 지금의 완주군 삼례읍·봉동읍·비봉면과 익산시 왕궁면 일부)과 함께 금마군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또한 감물아현을 함열현(咸悅縣)으로 고쳐 임피군(臨陂郡, 지금의 군산 동부)의 영현으로 삼고 지량초현을 여량현(礪良縣)으로 고쳐 덕은군(德恩郡, 지금의 논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가 개국한 뒤, 940년(태조 23) 야산현을 낭산현(朗山縣)으로 개칭하였다. 995년(성종 15) 전국이 10도(道)로 나뉘어 금마군을 비롯한 익산 지역은 강남도(江南道)에 속하였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전국 행정구역이 4도호부 8목(牧) 중심으로 개편되어 전라도 전주목(全州牧)에 속하였다. 낭산현과 옥야현은 1176년(명종 6)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가 얼마 후에 다시 전주의 속현(屬縣)이 되었고, 금마군은 1344년(충혜왕 복위 5) 원나라 혜종의 황후인 기황후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익주(益州)로 승격되었다. 특수행정구역인 향소부곡으로는 함열현에 도내산은소(道乃山銀所)를 두어 은을 생산하였으며, 1321년(충숙왕 8) 이곳 출신의 백안부개(伯顔夫介)가 원나라에서 본국에 공을 세워 용안현(龍安縣)으로 승격되었다. 1391년(공양왕 3) 여량현에 감무를 두어 낭산현을 겸임하게 하였으며, 전주의 속현인 풍제현(風堤縣)을 용안현에 편입시켰다.

조선이 개국한 뒤, 1404년(태종 4) 여량현과 낭산현을 여산현(礪山縣)으로 통합하였으며, 1409년(태종 9)에는 용안현과 함열현을 안열현(安悅縣)으로 합치고 흑석부곡(黑石部曲)을 익주의 직할 구역으로 편입시켰다. 1413년(태종 13) 8도제가 시행되면서 익주는 익산군(益山郡)으로 개편되어 전라도 전주부(全州府)에 편제되었으며, 1417년(태종 17) 안열현이 다시 용안현과 함열현으로 분리되었다. 여산현은 1436년(세종 18) 태종의 비인 원경왕후의 외향이라 하여 여산군으로 승격되었고, 1699년(숙종 25)에는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의 본향이라 하여 여산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이후 익산군·여산부·함열현·용안현의 행정구역은 조선 후기까지 유지되었다. 조선 후기에 각읍에서 편찬한 읍지(邑誌)를 모아 엮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익산군은 10면(군내면·구문천면·두천면·두촌면·미륵면·용제면·율촌면·제석면·지석면·춘포면), 여산부는 11면(부내면·공촌면·북일면·북삼면·서이면·서삼면·서사면·천동면·천서면·피제면·함서면), 함열현은 11면(현내면·동일면·동이면·동삼면·서일면·서이면·남일면·남이면·북일면·북이면·북삼면), 용안현은 4면(현내면·동면·남면·북면)을 각각 관할하였다. 1895년(고종 32)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府)로 개편되어 여산부·함열현·용안현은 여산군·함열군·용안군이 되어 익산군과 함께 전주부에 소속되었다가 이듬해 23부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13도로 재편되면서 전라북도에 편제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여산군·함열군·용안군이 익산군으로 통합되어 18면(익산면·금마면·낭산면·망성면·북일면·삼기면·성당면·여산면·오산면·왕궁면·용안면·웅포면·춘포면·팔봉면·함라면·함열면·황등면·황화면)으로 병합되었으며, 대체로 익산군 지역은 익산면을 비롯하여 금마면·북일면·삼기면·오산면·왕궁면·춘포면·팔봉면으로, 여산군 지역은 낭산면·망성면·여산면·황화면으로, 함열군 지역은 성당면·웅포면·함라면·함열면·황등면으로, 용안군 지역은 용안면으로 편제되었다. 1931년 익산면이 익산읍으로 승격되어 1읍 17면이 되었으며, 같은 해에 익산읍이 이리읍(裡里邑)으로 개칭되었다.

8·15광복 후, 1947년 이리읍이 이리부(裡里府)로 승격되어 익산군에서 분리되었으며, 1949년에는 이리부가 이리시로 승격되었다. 1963년 익산군의 황화면이 충남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되었고, 1970년 용안면에 용동출장소 설치되었다. 1974년 익산군의 북일면이 이리시에 편입되었으며, 1979년 함열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1읍 14면이 되었다. 1983년 익산군의 팔봉면 전역과 춘포면 석탄리가 이리시에 편입되었고, 1986년 용동출장소가 용동면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을 통합한 도농복합형 익산시가 출범하여 1읍 14면 19행정동(갈산동·계문동·남중1~2가동·동산동·마동·모현동·목천동·북일동·삼성동·송학동·신동·신흥동·인화동·주현동·중앙동·창인동·팔봉동·평화동)으로 편제되었다.

1996년 북일동이 영등동과 어양동으로 분동되었고, 1998년에는 갈산동·중앙동·창인동이 중앙동으로, 목천동·평화동이 평화동으로, 주현동·인화동이 인화동으로, 남중1~2가동이 남중동으로, 계문동·신동이 신동으로, 어양동·영등동이 영등동으로 각각 합동되고 신흥동이 폐지되어 12행정동으로 재편되었다. 2003년 영등동이 영등1~2동과 어양동으로 분동되어 14행정동으로 정비되었다. 2020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읍(함열읍) 14면(금마면·낭산면·망성면·삼기면·성당면·여산면·오산면·왕궁면·용동면·용안면·웅포면·춘포면·함라면·황등면) 14행정동(남중동·동산동·마동·모현동·송학동·신동·삼성동·어양동·영등1~2동·인화동·중앙동·팔봉동·평화동) 31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참조항목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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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서원

화산서원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