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사

수선사

[ 修禪社 ]

요약 고려 후기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만든 혁신불교적 신앙결사단체 및 사찰의 이름.

1190년(명종 20)에 공산(公山:지금의 팔공산) 거조사(居祖社)에서 결성되었다. 초명은 정혜사(定慧社)이며 뒤에 송광사(松廣寺)로 개칭되었다. 무신의 난 이후 왕권의 약화와 함께 무신 상호간의 권력쟁탈전, 농민과 천민의 봉기 등이 그치지 않자 지눌은 불자의 각성을 주장하며 거조사에서 법회를 갖고 정혜결사(定慧結社)를 결성한 뒤 이름을 정혜사라 하였다. 이후 몰려드는 인파로 장소가 비좁게 되자 송광산에 있는 길상사(吉祥寺)로 옮겼고 1205년 길상사 중수공사가 끝나면서 왕명에 의해 송광산을 조계산으로, 정혜사를 수선사로 개칭하였다.

결사 초기에는 당시 집권세력인 무신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으나 제2세 진각국사 혜심(慧諶) 때에 이르러 왕실과 무신 귀족, 유학자 관료 등이 입사함으로써 중앙의 정치세력과 연결되었다. 이에 따라 교단은 크게 발전하였고 제3세 몽여(夢如), 제4세 혼원(混元), 제5세 천영(天英) 국사를 거치면서 중앙세력과 더욱 밀착되어갔다. 이후 무신정권이 붕괴되고 원나라의 간섭을 받게 되면서 새로이 권문세족으로 등장한 재추(宰樞)들이 후원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지눌의 수선사 결사는 정혜쌍수(定慧雙修), 즉 불교 수행의 핵심을 이루는 정(定)과 혜(慧)를 함께 닦자는 실천운동이며 여기에 화엄사상을 도입하여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을 세워 화엄과 선이 근본에 있어서는 둘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대혜종고의 간화선(看話禪)을 받아들여 전통적인 선사상을 펼쳐나감으로써 수선사의 지눌사상은 선교일치(禪敎一致)의 완성된 철학세계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수선사의 성립은 선교일치의 완성과 간화선의 선양이라는 불교사상적인 의미 외에 실천불교로서의 임무를 이루었다는 의미를 함께 지닌다. 수선사는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모두 16국사를 배출하며 동방 제일의 도량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였으며 고려 후기 불교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