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심

혜심

[ 慧諶 ]

요약 고려 무신집권기 조계종 승려로 저서에 《선문염송(禪門拈頌)》등이 전해진다.
출생-사망 1178 ~ 1234
영을(永乙)
무의자(無衣子)
시호 진각국사(眞覺國師)
활동분야 종교
주요저서 《선문염송(禪門拈頌)》, 《선문강요(禪門綱要)》

속성 최(崔). 자 영을(永乙). 호 무의자(無衣子). 법호 혜심(慧諶). 시호 진각국사(眞覺國師). 탑호 원소(圓炤). 혜심은 원래 1201년(신종 4)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유학자였으나 마음을 돌려 불교에 귀의하여 불교정화운동의 일환인 수선사(修禪社)에 들어갔다가 (知訥)의 뒤를 이어 제 2세 사주(社主)가 되었다. 이후 고종이 즉위하자 선사(禪師), 뒤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다. 1219년(고종 6)에 수선사에 있으면서 (斷俗寺)의 주지를 겸임하다가 월등사(月燈寺)에서 죽었다. 송광사(松廣寺)에 비가 있다. 저서에 《선문염송(禪門拈頌)》 《선문강요(禪門綱要)》 등이 있다.

그의 선사상은 대체적으로 스승인 지눌의 것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간화선(看話禪)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했다. 또 최씨무신정권과 매우 밀착되어 있었다. 지눌때부터 이미 의 후원을 받았지만, 혜심에 이르러서는 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서로 돕는 각별한 사이에 있었다. 최우 본인이 수선사에 입사한 것은 물론이고 두 아들을 혜심에게 보내 머리를 깎게 하기도 하고,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는 등 여러 면에서 이러한 점이 두드러지는데 이런 양자간의 밀착으로 최씨정권으로서는 상대방으로부터 정신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후원을 받을 수 있었고, 혜심의 수선사 역시 경제적 뒷받침과 함께 교세의 확장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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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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