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화

최창화

[ 崔昌華 ]

요약 재일(在日)한인교회 목사. 6 ·25전쟁 직후인 1954년 일본으로 건너가 목사가 되었다. 1980년 11월부터 외국인에 대한 지문재취 거부운동 및 ‘한국인 이름 찾기’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1993년 일본의 지문날인제도가 철폐되었다.
출생-사망 1929 ~ 1995.2.8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평북 선천(宣川)

평안북도 선천(宣川) 출생. 4대째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나 6 ·25전쟁 직후인 1954년 일본으로 건너가 고베[神戶]개혁파신학교를 졸업한 후, 재일대한기독교 총회에서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다. 기타큐슈시[北九州市] 고쿠라[小倉]교회의 담임목사로 일하면서, ‘재일한국인·조선인의 인권획득투쟁전국연합회’를 조직, 피아니스트인 딸 선애(善愛)와 함께 1980년 11월부터 외국인에 대한 지문재취 거부운동과 아울러, ‘한국인 이름 찾기’ 서명운동을 벌여 그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1985년 지문채취 거부죄로 부녀가 고발을 당하고, 후쿠오카[福岡]지방법원 기타큐슈지원으로부터 벌금형을 받기도 하였다. 일본 NHK 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발음하는 데 항의, “한국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부르는 것은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소송을 제기하여, 씨명 호칭의 인격권을 인정받는 등, 재일교포들의 인권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이러한 끈질긴 노력의 결과, 1993년 일본정부는 지문날인제도 철폐의 외국인등록법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폐암으로 기타큐슈시 고쿠라 기념병원에서 죽자, 장례는 재일대한기독교총회장으로 치러졌다.

참조항목

목사, 스미스법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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