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옥선

판옥선

[ 板屋船 ]

요약 조선시대 수군의 대표적인 전투선이며 노를 젓는 노꾼은 1층 전투원은 2층에 배치하였다.
판옥선

판옥선

분류 전투선
제작국가 조선시대
제작년도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乙卯倭變) 이후
사용국가 조선

명종(明宗) 때를 전후해서 왜적은 그들의 배를 개량하여 침략해오기 시작했다. 왜선의 규모는 커지고 화포를 강화하여 조선의 맹선으로 이들을 격퇴하기가 어려워졌다. 판옥선은 이러한 왜선을 무찌르기 위해 1555년(명종 10)에 만든 배이다.

그 전까지 사용하던 평선(平船)인 맹선을 대신해 배 위의 네 귀에 기둥을 세우고 사면을 가려 마룻대를 얹었다. 지붕을 덮어 2층 구조로 된 배에서 노를 젓는 병사들은 아래층에, 공격을 담당하는 병사들은 윗층에 배치했다. 그 결과, 서로 방해받지 않고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판옥선의 승선인원은 약 125~130명 이었고 조선말에는 200명까지 탑승하였다.

판옥선은 배가 높은 2층 구조로 왜구들이 기어오를 수가 없었다. 이는 왜구들의 장점인 칼을 빼들고 펼치는 백병전을 전개할 수 없었으며, 판옥선의 높은 구조는 위에서 아래를 향하여 활을 쏘기에 매우 유리하고, 함포의 포좌가 높게 만들어져 명중률이 높았다. 또한 노군의 수가 증가하여 하나의 노를 5명의 노군이 저을수 있게 되어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이처럼 기동성과 견고함을 갖춘 판옥선은 을묘왜변(乙卯倭變) 이후에는 가장 중요한 전투선 역할을 하였고, 특히 임진왜란 때에는 거북선과 더불어 많은 활약을 한 가장 규모가 컸던 전투선이었다.

하지만 이때 왜구들의 침입이 줄어들자 판옥선 때문에 국고를 낭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율곡은 이런 조정의 비판과 달리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였고 판옥선 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판옥선이라는 이름은 개명되어 전선(戰船)으로 불리게 되었다.

판옥선 본문 이미지 1

판옥선의 체제에 관해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보이는 “李恒福曰 我國戰船 上設板屋 周以防牌 用夫一百餘名儼然 爲一少城堡”라는 기록에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2021년 10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연구 및 복원 작업이 완료됨에 따라, 판옥선의 제원은 길이 32.16m, 너비 5.56m, 선체 중량 140.3톤이며 내부에는 화장실과 부엌과 같은 시설도 구비되었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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