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

창가

[ 唱歌 ]

요약 갑오개혁(甲午改革) 이후 근대적인 각성과 조국의 자주 독립에 대한 열망을 서양식 창가조(調)로 읊은 시가(詩歌) 형식.

개화가사(開化歌辭), 즉 개화시(開化詩)에서 발전한 단계의 시가 형식으로서, 양자는 모두 가창(歌唱)을 전제로 하였으나, 전자는 가창보다 가사(歌詞)에 치중한 반면, 이 창가는 가사보다 가창을 위주로 하였다. 그리고 곡조도 그 모체가 되었던 찬송가조(讚頌歌調)에서 벗어나 일반적인 서양음악에 의한 본격적인 근대의 노래로 형성되어 갔다. 가사에서도 4 ·4조에서 7 ·5조가 기준이 되기에 이르렀고, 추상적인 개화사상의 고취에서 점차 근대적인 사실성(寫實性)의 표현 기법이 도입되어 새로운 문장감각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창가는 전단계의 시가 형식인 개화가사나 개화시보다 오래 지속되었고, 대중에게 전파되는 진폭(振幅)도 넓었다. 개화기의 여러 잡지를 통해서 보급되는가 하면, 창가는 근대식 교육기관의 교과과목으로 채택되어 방방곡곡에 퍼져나감으로써 민족적 ·정서적 교육에 이바지한 바 컸다. 통설로서, 창가의 효시(嚆矢)를 1908년에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지은 《경부철도가(京釜鐵道歌)》로 치나, 이에 앞서 1886년의 배재학당(培材學堂) 교과목에는 이미 ‘창가’가 있었으며, 1896년 《독립신문》에 발표된 4 ·4조의 애국가 계열 창가가 있었음도 간과할 수는 없다.

창가는 1910년 국권피탈 이후 민족혼을 고취하고 광복을 바라는 민중의 열망을 담은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결국 창가는 서유럽의 근대사조 수입과 민족의 자주 ·독립에 대한 갈구가 충만하였던 시기의 필연적인 시가형식으로서, 고전시가 형식에서 신시(新詩)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과도적인 역할을 다하였다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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