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존겸

정존겸

[ 鄭存謙 ]

요약 조선 후기 문신. 1772년 당론을 주장해 북청에 유배되고, 이조판서 · 우의정을 거쳐, 1777년 좌의정이 되었으며 1781년 실록청총재관을 겸했다.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 1783년 우의정이 되고, 세자사부를 겸하고, 1786년 중추부영사에 전임되었다.
출생-사망 1722 ~ 1794
본관 동래
대수
양재 ·양암 ·원촌
시호 문안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양재집》

본관 동래(東萊). 자 대수(大受). 호 양재(陽齋) ·양암(陽庵) ·원촌(源村). 시호 문안(文安). 이재(李縡)의 문인. 1751년(영조 27)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한 뒤 교리(校理) ·(副提學)을 거쳐, 1761년 (承旨) 때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서유(西遊)를 왕에게 고하지 않은 죄로 삭직되었다.

뒤에 기용되었으나 1772년 당론(黨論)을 주장하여 북청(北靑)에 유배되고, 이듬해 풀려나 이조판서 ·우의정을 거쳐, 1777년(정조 1) 좌의정이 되었으며, 1781년 실록청총재관(實錄廳摠裁官)을 겸하였다. 이듬해 (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1783년 우의정이 되고, 이듬해 세자사부(世子師傅)를 겸하고, 1786년 중추부영사에 전임되었다. 1791년 영의정으로 퇴관하고 (奉朝賀)가 되었다. 문집으로 《양재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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