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분

정분

[ 鄭苯 ]

요약 조선 전기 문신. 우찬성으로 충청 · 전라 · 경상도 도체찰사를 겸직하고 좌찬성 · 호조판사를 겸임, 이듬해 김종서 · 황보인과 함께 문종의 고명지신으로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다.
출생-사망 ? ~ 1454
본관 진주(晉州)
자외(子畏)
애일당(愛日堂)
시호 충장(忠莊)
활동분야 정치

본관 진주(晉州). 자 자외(子畏). 호 애일당(愛日堂). 시호 충장(忠莊). 1416년(태종 16) 친시문과에 급제,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고 1421년(세종 3) 이조좌랑을 거쳐 1425년 병조정랑이 되었다. 1428년 사인(舍人)으로 함길도경차관(咸吉道敬差官)이 되어 수재민 구호에 공을 세웠고, 1430년 집의(執義)로서 성개(成槩)의 노비사건을 계문(啓聞)하지 않은 죄로 유배되었다가 1432년 풀려나와 우승지 ·충청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했다. 그 후 공조참판으로 주문사(奏聞使)가 되어 명(明)나라에 다녀오고 1444년 예조참판 ·호조판서를 지냈으며, 1447년 좌참찬으로 숭례문(崇禮門) 건축공사를 감독했다.

1450년 우찬성으로 충청 ·전라 ·경상도 도체찰사(都體察使)를 겸직하고 1451년(문종 1) 좌찬성 ·호조판사를 겸임, 이듬해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과 함께 문종의 고명지신(顧命之臣)으로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다. 1453년(단종 1) 전라 ·충청 ·경상도 도체찰사가 되어 충주로 향하던 중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낙안(樂安)에 안치되었다가 사사(賜死)당했다. 뒤에 신원(伸寃)되고 장흥(長興)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