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릉

서울 정릉

[ Jeongneung Royal Tomb, Seoul , 서울 貞陵 ]

요약 조선 태조 이성계의 정비 신덕왕후의 무덤. 1970년 5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정릉

정릉

지정종목 사적
지정일 1970년 5월 26일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아리랑로19길 116 (정릉동, 정릉)
시대 조선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크기 면적 299,574㎡

조선 태조(太祖, 재위 1392∼1398)의 현비로 방번(芳蕃)·방석(芳碩) 두 왕자와 경순공주(慶順公主)를 낳은 신덕왕후(神德王后 ?~1396) 강씨의 무덤이다. 신덕왕후 강씨는 신의왕후 한씨 사후 정비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신덕왕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태종 이방원은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강등시켰고 능은 묘로 격하되어 일반 무덤과 비슷해졌다. 또한 정릉의 일부 석조물들을 홍수로 유실된 광통교를 다시 세우는 데 갖다 쓰고, 정자각도 없애버렸다. 하지만 약 200년 후 1669년(현종 10) 송시열의 상소에 의해 신덕왕후는 왕비로 복위되었고, 무덤도 왕후의 능으로 복원되었다.

원래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주한영국대사관 자리 추정)에 능역이 조성되었으나 다른 왕릉과는 달리 정릉만이 도성 안에 있고, 너무 크고 넓다 하여 도성 밖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이는 태조가 신덕왕후 소생인 여덟째 왕자 방석(芳碩)을 세자로 정한 것에 대한 태종의 사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정릉은 다른 왕후의 능에 비해 빈약한 편으로 병풍석이나 난간석이 없으며, 상석과 상석을 받치는 고석(鼓石)과 장명등, 망주석·석양(石羊)·석호(石虎)·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이 배치되어 있다. 그 중 장명등은 고려 공민왕릉(현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에서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도 높다. 1970년 5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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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정릉 조선 태조 이성계의 정비 신덕왕후의 무덤 사적 조선 태조 이성계의 현비로 방번·방석두 왕자와 경순공주를 낳은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이다. 신덕왕후 강씨는 신의왕후 한씨 사후 정비로 책봉되었다. 태종 이방원은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강등시켰고 능은 묘로 격하되어 일반묘가 되었으나 약 200년 후 1669년(현종 10) 송시열의 상소에 의해 신덕왕후는 왕비로 복위되었고, 무덤도 왕후의 능으로 복원되었다. 정릉은 다른 왕후의 능에 비해 빈약한 편으로 병풍석이나 난간석이 없으며, 상석과 상석을 받치는 고석과 장명등, 망주석·석양·석호·문인석·석마 각 1쌍이 배치되어 있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