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유전학

인류유전학

[ human genetics , 人類遺傳學 ]

요약 사람의 생명현상을 지배하는 근본원리와 그 변이현상을 유전자(DNA) 또는 염색체수준에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람의 유전자는 대부분 핵(核) 속의 염색체 위에 일정한 자리를 잡고 나열되어 있고, 그 염색체는 22쌍의 상염색체(常染色體)와 2개의 성염색체(性染色體)로 이루어져 있다. 양친은 각각 자신의 유전자를 정자난자의 염색체를 통하여 반씩 자식에게 전달한다. 양친의 배우자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수정란이 어버이를 닮은 개체로 발육되는 현상은 정자와 난자를 통하여 물려받은 유전자의 유전정보가 영양소나 외부 환경과 관련되어 발현(發現)되어 가는 과정이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생명현상도 유전자의 활동에 기인하는 형질발현(形質發現)이다. 따라서 인류유전학의 연구성과는 인간생물학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기반이 된다.

또한 인류유전학에서는 변이(變異)의 유전적 원인을 연구의 과제로 삼고 있다. 변이란 같은 종의 생물 중에서 개체에 따라 유전적 특징이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여러 가지 피부색·체격 및 특수한 유전병 등은 모두 이에 속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일란성쌍생아(一卵性雙生兒)를 제외하면, 유전적으로 똑같은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여러 가지 병은 유전자나 염색체의 변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수혈(輸血)이나 장기이식(臟器移植)의 경우는 두 사람 사이에 특정한 유전자군이 같아야만 한다.

인류유전학은 G.J.멘델의 유전법칙이 발표되기 전인 1823년 로렌스가 사람의 육체와 도덕적 심리나 행위에 관한 유전도 가축의 유전과 근본적으로 동일함을 제창한 때부터 논의되었다. F.갈톤은 인류유전의 개척자였다. 1902년 가로드는 〈선천성 대사이상(代謝異常)〉이라는 논문에서 인류유전과 효소(酵素)의 관계를 논하였다. 인류유전학은 1950년대 이후 특히 분자생물학·생화학·세포생물학·면역학·의학·수학 등의 중요한 원리와 기술을 이용하여 급속한 발전을 거듭해 왔다.

한때는 사람을 임의로 교배실험에 이용할 수 없는 연구방법상의 제약 때문에 연구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현재는 인간도 유전학 연구대상으로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즉, 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사람의 체세포(體細胞)에서 유전자 ·염색체·유전자산물 등을 얻어내어 분석하거나 체세포 수준에서 유전자의 분리, DNA의 재조합, 유전자의 이식 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류는 의학 및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역사학적으로도 가장 잘 연구되고 있는 생물의 한 종이다. 이와 같은 분야의 요청에 의해서도 인류유전학의 연구는 촉진되고 있다.

유전현상을 지배하는 법칙은 사람의 경우도 근본적으로 다른 생물과 같다. 사람의 생식세포에는 22개의 상염색체와 1개의 성염색체가 존재하고, 거기에는 약 28억 5천만 개의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DNA가 들어 있어서, 그 DNA의 특정부위가 유전자로서 활동한다. 성염색체에서 정자는 X 또는 Y염색체, 난자는 X염색체이다.

따라서 사람의 1개 체세포 중에는 약 56억 개의 염기쌍이 들어 있는 셈이다. 사람의 체세포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에도 모친에서 유래한 약 1만 6000개 염기쌍의 DNA가 있다. 사람의 배우자에 들어 있는 23개의 염색체 DNA를 모두 연결하면 유전적거리로 약 3,000 모건 단위가 된다.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염기의 기호(A,T,G,C)로 나열된 상태를 A4판(版)의 보통책 크기에 수록한다면, 약 60만 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양이 된다. 이러한 양의 염기쌍으로 구성된 유전자수는 약 26,000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유전적 원인에 의한 변이를 돌연변이(突然變異)라고 하는데 사람의 돌연변이형질은 그 원인에 따라 단인자성(單因子性) 형질·염색체이상·다인자성(多因子性) 형질의 세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그룹의 단인자성형질은 단일유전자가 형질발현을 지배하는 경우이며 멘델의 유전법칙을 따른다. 현재까지 알려진 단인자성 형질은 상염색체성 우성형질이 900여 종류 이상, 열성형질은 600여 종류가 알려졌고, X염색체상의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형질만도 120여 종류가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유전형질 중에는 혈액형 ·피부색, 머리카락의 모양과 같이 정상형질도 있으나 돌연변이 유전자에 의하여 발병하는 유전병도 대단히 많다. 예를 들면, 이상 헤모글로빈유전자(HbS 유전자)는 그 유전암호까지 밝혀져서 유전병이 생기는 원인이 분자생물학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약 200여 종의 단인자성(單因子性) 유전병은 특정 효소의 결핍에 기인하는 사실이 알려졌고, 그 중 일부는 태아의 출산전 양수검사(羊水檢査)나 신생아의 집단검사로 조기발견하여 조치하고 있다.

둘째 그룹의 염색체이상은 염색체의 수와 구조에 이상이 생긴 경우이다. 염색체이상의 경우는 대부분 기형(畸形)과 지능장애를 수반한다. 염색체이상의 빈도는 임신 초기단계에서는 6% 이상으로 높지만 출산되기 이전에 약 90% 이상은 자연유산 또는 사산(死産)되어 자연도태되므로, 약 0.6%가 출산되는 셈이다. 염색체이상의 진단도 양수검사로 할 수 있으므로 조기발견하여 출산 전 조치는 가능하지만 치료방법은 없다.

셋째 그룹의 다인자성(多因子性) 형질은 여러 유전자로써 규정되는 관계로 그 유전적 원인분석이 어렵고, 또한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신장·체중·지능지수·선천성기형·알레르기·조현증(정신분열증)·성인병 등이 이에 속한다.

이와 같이 유전형질은 정상형질이거나 병적 형질이거나 간에 주로 다형현상을 나타내며 그 출현빈도도 인류집단에 따라서 다양하다. 그러한 유전적 다형현상과 그 출현빈도의 다양성이 어떤 원인에 기인하는지도 인류집단유전학에서 많이 연구되고 있다. 즉, 겸형적 혈구빈혈증은 열대성 말라리아가 성행한 지역에 살던 흑인이나 그러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집단에서 많이 발생한다. 그 이유는, 이 빈혈증을 지배하는 유전자를 헤테로(HbA/HbS)로 가진 사람은 말라리아에 저항성이 적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들은 인류의 진화문제를 해석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인류는 현재 생명과학에 있어서 첨단기술의 하나인 유전자공학을 발전시켜 자신의 유전자를 꺼내서 그 구조를 분석하거나, 유전자를 이식(移植)하거나, 또는 이식유전자에 의하여 유전정보를 변경시키는 등 많은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인류유전학의 연구는 단순한 자연과학적 범주나 의학적인 한계를 훨씬 초월한 사회·경제·윤리·문화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인류의 진화, 개인식별, 유전적 다양성의 적응성 등을 해명하는 데도 크게 공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