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조

이청조

[ 李淸照 ]

요약 '완약파(婉約派)' 계열에 속하는 사(詞)의 작풍을 갖은 중국 송 대(宋代)의 시인. 우미 섬세를 기조로 하나 당시의 구어(口語)를 대담하게 삽입한 재기 넘치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주요 저서에는 《수옥집》이 있다.
출생-사망 1081 ~ 1141?
이안거사·수옥
국적 중국 송나라
활동분야 문학(詞)
출생지 중국 산동성(山東省) 제남(濟南)
주요저서 《수옥집》
주요작품 《수옥집》

 

중국 송나라 때 인물이며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호는 이안거사(易安居士) ·수옥(漱玉)이다. 1084년 중국 산동성(山東省) 제남(濟南)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소동파(蘇東坡)의 문인으로 후사학사(後四學士)를 지낸 이격비(李格非)이며 강직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었다. 18세에 명망있는 집안의 자제이자 금석문의 연구가인 조명성(趙明誠)과 혼인하였다. 남편과 부부금슬은 좋았지만 이부시랑(吏部侍郞)인 시아버지 조정지(趙挺之)와는 갈등을 빚었다. 조정지는 권력욕이 많았으며 정치적인 술수에 뛰어난 인물로 소동파와 이격비를 탄핵하기도 하였다. 

조명성이 벼슬길에 올라 지방관으로 파견을 나가자 남편과 떨어져 지냈으며 이때의 심경을 시(詩)로 남기며 본격적인 시작(詩作)을 하였다. 시아버지의 분별없는 권력욕으로 정계에서 쫓겨나고 남편마저 벼슬길이 막히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청조는 실의에 빠진 남편을 도와 10년이 넘게 금석학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그 결과《금석록(金石錄)》을 완성하였다. 북송(北宋) 말 금(金 여진족)이 침략해오자 금석과 고서들을 보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남경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그들 부부가 수집한 금석과 고서화의 많은 분량이 소실되었다. 1129년 동란기에 과로로 쓰러진 남편과 사별하였고 금나라의 군대가 침략해 들어와 남아있던 금석과 고서들이 전량 소실되고 말았다.

여성에 대한 유교적 속박을 거부했으며 남성과 동등한 여성으로서 평등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한때 남편의 친구와 재혼을 했지만 배신을 당하고 고통만 가중되었다. 전란을 피해 저장[浙江]의 각지를 유랑하여 힘겨운 삶을 살았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녀가 어디서 살다 생을 마감했는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는다.

사(詞)의 작풍은 이욱(李煜) → 진관(秦觀) → 주방언(周邦彦) 등의 이른바 '완약파(婉約派)' 계열에 속하며, 아름답고 섬세함을 기조로 쓰여진 작품이 많으며 당시의 구어(口語)를 대담하게 삽입한 재기 넘치는 작품도 있다. 남편과 떨어져 지내며 그리워하는 내용과 이별을 담은 주옥같은 사(詞)를 남겼다. 그리고 여진족의 침략으로 달아나는 황제와 무능한 조정에 분개하는 시를 많이 썼다. 특히 유랑 후의 작품에는 인생의 고독과 불안을 투시한, 청렬(淸冽)한 맛이 가미된 송사(宋詞)의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이청조가 남긴 50여 편의 사(詞)가 남아있으며 문집에 《수옥집》 1권이 있다.

참조항목

중국문학

카테고리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