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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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容泰 ]

요약 한말의 정치가. 고부민란 때 안핵사로 임명되어 농민들을 약탈하고 가족을 살해하는 등 만행을 하여 동학교도 재궐기를 유발시켰다.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유배생활을 했으나 한일병합 후 일본 정부의 자작의 작위를 받았다.
출생-사망 1854.7.13 ~ 1922.7.23
본관 전주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경기도 안성

본관 전주(全州). 군수(郡守)로 1885년(고종 22) 증광시(增廣試) 병과로 급제, 홍문관 부수찬에 임명되었다. 1891년 참의내무부사(參議內務府事)가 되었다. 남양부사, 장흥부사(長興府使)를 지낸 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인 고부민란이 일어나자 안핵사(按覈使)로 임명되었다. 그는 고부군 동학농민군 민란의 책임이 농민들에게 있다 하여 사람들을 마구 잡아들이고 가산을 불태우며 약탈까지 자행하였으며 심지어 가족을 살해하는 등 만행을 하였다. 이일로 그는 경북 김산군에 유배되었으며 동학교도의 재궐기가 발생하게 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나 중추원 의관(議官), 1899년(광무 3) 평리원(評理院) 재판장, 1901년 주미(駐美)공사를 거쳐 비서원경(秘書院卿) ·사직제조(社稷提調) 등을 지냈다. 찬성(贊成)에서 중추원 부의장이 되었다가 내부대신에 옮겼으며, 궁내부 특진관을 여러차례 지냈다. 1905년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매국노를 처단하는 상소를 올리고 기금을 모금했다가 체포되어 전라남도 지도(智島)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그러나 1910년 10월 조선귀족령에 따라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은사금 2만 5천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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