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일 1세

이스마일 1세

요약 이란 사파비왕조의 창시자(재위 1502∼1524). 지방정권을 타도해 국토를 통일하고, 디야르 바크르·아할라트·비틀리스·아리시 및 바그다드를 점령했다. 시아파 성지 케르벨라·나자프를 확보에 성공했다. 우즈베크족과 결전, 격파했다.
원어명 Ismā‘īl I
출생-사망 1487.7.17 ~ 1524.5.23
국적/왕조 이란
재위기간 1502년∼1524년
활동분야 정치

아르다빌의 성자(聖者) 셰이크(교주) 사피 옷딘의 자손이며 어머니는 우준 하산(아크 쿠윤리조(朝)의 제4대 통치자)의 딸이다. 어렸을 때 우준 하산의 아들 야쿠브에 의하여 두 형들과 함께 파르스의 이스타흐르에 유배되었으나, 후에 야쿠브의 아들 루스탐에 의하여 석방되자, 라히잔으로 피해 그곳 통치자 카르키야 미르 알리의 보호를 받았다. 그는 그 땅의 신비주의자들의 신앙적 지지를 얻고 시리아 ·소아시아로부터 참여한 자들을 함께 모아 1500년 아르다빌에 도착, 후에 그의 군대의 중심세력이 된 튀르키예계(系) 7부족도 막하(幕下)에 넣었다. 1501년경 바쿠를 함락하고 아제르바이잔에 진출, 알완드왕 및 백양왕조(白羊王朝)의 투르크멘족을 슈루르에서 격파하고 타브리즈에 입성하여 이란의 제위(帝位)에 올랐다(1502).

지방정권을 타도하여 국토를 통일하고, 디야르 바크르 ·아할라트 ·비틀리스 ·아리시 및 바그다드를 점령하였으며(1508), 시아파의 성지 케르벨라 ·나자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후에 우즈베크족과 결전하여 격파하였으나(1510), 소아시아에서의 시아파교도의 반란과 튀르키예인의 시아파교도 학살로 오스만투르크 제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아제르바이잔의 찰디란 싸움에서 오스만투르크의 셀림 1세에게 패하여(1514) 타브리즈를 빼앗겼다. 그의 아들은 타흐마스프 1세이다.

참조항목

사파비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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