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지

읍지

[ 邑誌 ]

요약 부(府) ·목(牧) ·군(郡) ·현(縣) 등의 지방 각 읍을 단위로 하여 작성된 지리지.

읍지의 분포 상태를 보면 하삼도(下三道)와 함경도가 읍당 보유 읍지의 수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많다. 이를 통해서 이들 지역이 읍지 편찬의 중심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남부지방의 경우 성리학적 소양을 지닌 학자들이 다수 거주하면서 학맥을 일찍부터 형성, 문풍(文風)을 진작시킨 것과 관련이 있으며, 함경도는 군사적 요지라는 국방상의 요인이 작용한 데 연유한 것이었다. 읍지의 편찬 ·제작 활동은 읍 규모와도 관계가 있는데 목 ·부 등 대읍(大邑)이 군 ·현 등 소읍(小邑)에 비하여 많은 읍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것은 대읍일수록 사족(士族)의 영향력이 강하며 인적 ·물적자원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학덕을 갖춘 유능한 수령(守令)이 부임하기 때문이다.

읍지 편찬의 중심지역은 17세기까지는 경상도 ·전라도가 중심을 이루다가, 18세기에는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가 19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경기도 ·평안도 ·강원도 등에서 다수의 읍지가 제작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읍지 편찬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읍지 편찬의 중심지도 남부지방에서 경기도 ·평안도 등 중부 및 북부지방으로 이동하였다. 읍지의 수록 내용도 지역적 특징이 반영되어 있는데 경기도는 상업적 현상이, 평안도 ·함경도는 군사적 내용이, 경상도는 임수(林藪)조와 같은 항목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16~17세기는 읍지 편찬의 맹아기로서 사찬읍지(私撰邑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약 45개 지역에서 내용이 풍부하고 뛰어난 읍지들이 작성되었으며 주로 경상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읍지의 내용과 체재는 세종대 지리지의 장점인 정치 ·행정 ·군사적인 성격과 《여지승람(輿地勝覽)》의 장점인 인물 ·예속(禮俗) ·시문(詩文) 등 문화적인 성격을 종합하여 자세하다.

18세기 이후는 관찬읍지(官撰邑誌)가 사찬읍지를 압도하는 점이 특징인데, 숙종대에는 전국적 읍지 편찬이 시도되었다. 영조대에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는 종합적 성격을 지닌 공시적(共時的) 기록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읍지의 성격은 군사 ·재정 중심적인 것으로 변모하고 양적으로도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는데, 이는 당시 사회가 지닌 제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19세기 말엽에 작성된 읍지들은 외세의 침입과 정치 ·지방 재정의 문란 등과 같은 내부적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러한 점이 읍지의 성격을 변모시켜 가면서 방대한 문헌을 남기게 하였으나, 내용의 정확성과 풍부함에서는 오히려 이전 시기에 비하여 뒤떨어진다.

읍지의 환경과 지역에 대한 지리적 인식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변모하고 있었는데, 환경과 경관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는 환경에 대한 과학적 ·실증적 ·객관적 파악의 진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읍지도(邑地圖)의 첨부와 읍지도의 표기 내용의 상세화, 축척이나 좌표 방안의 사용, 근대적인 경위도(經緯度)를 이용한 읍의 절대적인 위치 표시, 환경에 대한 분석적 설명, 환경가능론적 또는 생태학적 입장에서의 환경 파악 등이 구체적인 내용이다. 읍지는 각 지방의 보다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자료로서 이를 이용하여 일정 지역의 향촌 사회 구조나 사회적 관계, 재정구조, 민속 ·유적 등 지방사와 관련한 여러 가지 내용을 복원하거나 고찰할 수 있다.

참조항목

민속, 유적, 지방사

카테고리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