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언이

윤언이

[ 尹彦頤 ]

요약 고려시대의 문신. 1135년 묘청의 난 때 김부식의 막료로 출전, 공을 세웠으나 정지상과 내통하였다는 김부식의 보고로 양주방어사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주역》에 정통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출생-사망 ? ~ 1149
본관 파평(坡平)
금강거사(金剛居士), 문강(文康)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역해(易解)》

본관 파평(坡平). 호 금강거사(金剛居士). 시호 문강(文康). 문하시중 관(瓘)의 아들. 문과에 급제, 인종 때 기거랑(起居郞)이 되었다. 이어 좌사간 정지상(鄭知常) 등과 정치의 득실을 논하여 시정에 반영하게 하였다. 1128년(인종 6) 예부시랑(禮部侍郞) 때 송나라에 가서 국교 재개를 청하고 돌아왔다.

1132년 국자사업(國子司業)이 되어 경연(經筵)에서 경의(經義)를 강의, 화서대(華犀帶)를 하사받았다. 앞서 예종 때 아버지가 지은 의천(義天)의 비문을 김부식(金富軾)이 함부로 고쳐 원한을 품고 있었는데, 1133년 김부식의 주역 강의를 묻고 논란하라는 왕명에 정연한 논리로 반박 설분하였다.

1135년 묘청(妙淸)의 난 때 김부식의 막료로 출전, 공을 세웠으나 정지상과 내통하였다는 김부식의 보고로 양주방어사(梁州防禦使)로 좌천되었다. 그 뒤 광주목사(廣州牧使)에 이어, 1148년(의종 2)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었다. 《주역》에 정통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저서에 《역해(易解)》가 있다.

역참조항목

금강사

카테고리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