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

유희경

[ 劉希慶 ]

요약 조선 중기의 학자. 예문에 밝았고 특히 상례의 1인자로 국상 절차도 그에게 문의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사들을 규합, 관군을 도왔으며 광해군 때 이이첨이 폐모의 소를 올리기를 간청했으나 거절했다.
출생-사망 1545 ~ 1636
본관 강화(江華)
응길(應吉)
촌은(村隱)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촌은집》 《상례초(喪禮抄)》

본관 강화(江華). 응길(應吉). 촌은(村隱). 13세에 부친상을 당하자 하루도 떠나지 않고 시묘(侍墓)하고 편모를 극진히 공양했다. 남언경(南彦經)에게 주문공(朱文公)의 《가례(家禮)》를 배워 모든 예문에 밝았고 특히 상례(喪禮)의 1인자로 국상(國喪) 절차도 그에게 문의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의사(義士)들을 규합, 관군을 도왔으며 광해군 때 이이첨(李爾瞻)이 폐모(廢母)의 소를 올리기를 간청하였으나 거절하고 그와 절교하였다.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왕은 그 절의(節義)를 가상히 여겨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진시켰다. 문집으로 《촌은집》, 저서로 《상례초(喪禮抄)》가 있다.

역참조항목

박인수, , 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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