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흠

유흠

[ 劉歆 ]

요약 중국 전한(前漢) 말기의 유학자. 궁정의 장서를 정리하고 육예(六藝)의 군서(群書)를 7종으로 분류하여 《칠략(七略)》이라 하였다. 이것은 중국 최초의 체계적인 서적목록이다.
출생-사망 BC 53? ~ 25
자준
별칭 나중 이름 수
국적 중국 한
활동분야 철학

자 자준(子駿). 나중에 이름을 수(秀), 자를 영숙(穎叔)으로 고쳤다. 아버지 유향(劉向)과 궁정의 장서(藏書)를 정리하고 육예(六藝)의 군서(群書)를 7종으로 분류하여 《칠략(七略)》이라 하였다. 이것은 중국에서의 체계적인 서적목록(書籍目錄)의 최초의 것으로 현존하지는 않지만,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가 대체로 그에 의해서 엮어졌다. 《좌씨춘추(左氏春秋)》 《모시(毛詩)》 《일례(逸禮)》 《고문상서(古文尙書)》를 특히 존숭하여 학관(學官)에 이에 대한 전문박사(專門博士)를 설정하기 위하여 당시의 학관 박사들과 일대 논쟁을 벌였으나 성사하지 못하고 하내태수(河內太守)로 전출되었다. 그 후 왕망(王莽)이 한왕조(漢王朝)를 찬탈한 후 국사(國師)로 초빙되어 그의 국정에 협력하였다. 만년에는 왕망의 포역(暴逆)에 반대하여 모반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여 자살하였다.

참조항목

삼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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