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브리아파

움브리아파

[ Umbrian school ]

요약 15세기에 주로 중부 이탈리아 움브리아지방에서 활약한 화파.

14세기에는 시에나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15세기 초 르네상스회화를 창시한 피렌체파의 영향을 받으면서 중부 이탈리아적 화풍으로 움브리아파라는 이름으로 통괄할 수 있는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였다. 최초의 화가는 마르케지방 파브리아노 출신의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이다. 그는 북부 아비뇽으로부터 전해졌다는 국제적 고딕양식의 화려한 색채에 의한 장식성과 도해성 그리고 피렌체파의 합리적인 조형성이 혼재한 르네상스에의 과도적 양식을 보였고, 이어 움브로토스카나파라고도 하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피렌체파의 전통에 르네상스회화의 과제인 원근법명암법을 연구하여, 움브리아파 회화는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즉, 그는 1400년대 전반에 있어서의 피렌체파에 의해서 이룩된 자연주의적 성과를 집대성하여 마사치오의 장대한 화풍을 중흥케 하였으며, 입체적인 인체표현과 색조에 의한 대기(大氣)의 투시도법적 효과에 의한 근대적 성격의 새로운 회화를 창조하여 움브리아파에 강한 자극이 되었다. 그의 문하인 멜로초 다 포를리는 파도바파인 만테냐의 영향에 궁정화가였던 플랑드르의 유스토스 폰 겐트로부터 유채기법을 배워 화면의 투시도법적 효과에 새 국면을 열었고, 이색적인 루카 시뇨렐리 또한 피에로의 조형이법(造形理法)에 피렌체의 동적 표현을 도입하여 해부학적 지식에 의한 나체의 정신표현을 추구, 미켈란젤로에의 길을 개척하였다.

한편 페루자지방에서는 피에로의 영향을 받은 페루지노에 의해서 움브리아파의 정서에 피렌체파의 합리성이 가미된 페르자파의 한 파가 형성되어 서술적 묘사에 뛰어나고 로마풍의 장식, 즉 그로테스크한 문양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핀투리키오가 나오고, 16세기 초에는 라파엘로에 의해 페루지노의 영향에 피렌체파인 프라 바르톨로메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 등 화가의 작풍이 종합 동화된 르네상스 고전양식이 확립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독자적인 발전은 볼 수 없었고 1504년 로마 교황령(領)에 합병되면서 자연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