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10국

5대10국

[ 五代十國 ]

요약 중국에서 당(唐)나라가 멸망한 907년부터, 960년에 나라를 세운 송(宋)이 전중국을 통일하게 되는 979년까지의 약 70년에 걸쳐 흥망한 여러 나라와 그 시대.

그 중 5대는 화북(華北)의 중심지대를 지배하고 정통왕조(正統王朝)의 계열로 볼 수 있는 양(梁:後梁) ·당(唐:後唐) ·진(晉:後晉) ·한(漢:後漢) ·주(周:後周)의 5왕조인데, 사가(史家)들이 그 이전에 존재하였던 같은 이름의 왕조와 구별하기 위해 앞에 후(後)자를 붙였다.

10국은 화남(華南)과 기타 주변 각 지방에서 흥망한 지방 정권으로, 오(吳) ·남당(南唐:江西 ·安徽 ·福建) ·오월(吳越:浙江) ·민(閩:福建, 뒤에 南唐에 병합) ·형남(荊南, 또는 南平) ·초(楚:湖南) ·남한(南漢:廣東 ·廣西) ·전촉(前蜀) ·후촉(後蜀:四川) ·북한(北漢:山西)을 말한다. 이 밖에도 단기간 독립을 유지하고 있던 연(燕:河北) ·기(岐:鳳州) ·주행봉(周行逢:建州) 정권 등이 있었다. 당나라 말기에 이르러 지방의 절도사(節度使:地方軍司令官)들은 군사 ·민사 ·재정 등 3권을 장악하여 군벌화(軍閥化)하고, 특히 875년의 왕선지(王仙芝) ·황소(黃巢)의 난에 활약한 유적(流賊)이나 이민족 용병(傭兵) 출신자들은 자립해서 절도사를 칭하여 이들이 병탄(倂呑)을 되풀이한 결과 대체로 11개 세력으로 갈라져, 후량(後梁)이 당의 제위(帝位)를 탈취한 것을 계기로 해서 각각 왕호(王號) 또는 제위를 칭하게 되었다.

이들 나라의 지배체제는 절도사의 막부(幕府)를 확충한 형태의 것으로서, 그 지배자들은 다투어 직할군단인 아군(牙軍)을 확대하고, 그 밖에도 세습화(世襲化)한 직업군인들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 일찍이 양성해온 친위군(親衛軍) 조직을 두었으며, 행정의 모든 부문에도 심복의 무장(武將)들을 앉혀 무인정치(武人政治)의 양상을 나타내었다. 이들 정권은 중원(中原)의 5대를 비롯해 모든 왕조들이 군인의 쿠데타로 성립된 것이었고, 하층계급 출신자가 권력의 정상에 뛰어오른 하극상(下剋上)의 양상을 띤 것이었다. 당나라 말기의 극한상태에 다다른 사회적 혼란으로 생산체제는 일시 붕괴되었으나, 각국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다투었기 때문에 점차 회복되어갔다.

5대에, 최초로 등장한 후량(後梁)은 옛 당나라 귀족 세력의 숙청에 힘을 기울여, 이 때문에 중원에서 탈출한 귀족들이 촉(蜀) ·남당(南唐) 등에 당문화를 들여오게 되었다. 그 뒤 처음에는 진왕(晉王)이라 칭하였던 이씨(李氏)가 923년 후당(後唐)이라 개칭하고 후량을 멸망시켜 화북을 거의 통일하였으며, 제도상으로도 새로운 통일 기운이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후당은 당나라 때의 3성 6부(三省六部)를 중심으로 한 행정체계를 대신해서 민정을 관장하는 재상(宰相:同平章事)과 군정을 관장하는 추밀사(樞密使), 재정을 관장하는 삼사사(三司使)가 중앙정부의 중심이 되고, 여기에 금군(禁軍:近衛兵) 장관인 시위친군도지휘사(侍衛親軍都指揮使)를 더해서 정권의 4대핵이 되게 하였다.

한편 화남(華南)에서는 오(吳)를 무너뜨리고 뒤를 이은 남당(南唐)을 중심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형남(荊南) ·오월(吳越) 등이 화남 ·화북의 완충지대적 존재로서 중개무역으로 나라를 보존하여 나갔다.

남한(南漢)은 남해무역(南海貿易)에 의존하였으나 다른 나라들은 특산물을 개발(吳越의 窯業, 四川의 製紙 등)하여 지역분업(地域分業)을 배경으로 해서 진(鎭) ·시(市) ·초시(草市) 등 소도시의 융성을 보게 되어 이는 뒤에 올 송(宋)의 재통일 아래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할 바탕이 되었다. 이 당시 농촌의 양세(兩稅)에 대해서 도시의 옥세(屋稅) ·지세(地稅)를 늘인 것도 이와 같은 경제발전에 대응한 것이었다.

그 사이 북방에서 발해(渤海)를 멸망시키고(926) 급격하게 강대해진 거란(契丹)은 후당에 반역한 후진(後晉)의 건국을 도와준 대가로 연운(燕雲) 16주(州)를 할양받고, 후진까지 멸망시켜 하북(河北)을 점령해서 폭정(暴政)을 하였다. 거란에 대한 민족적 단결의 필요성과 함께 군사력 ·재정규모 ·영토 등 모든 면에서 분할되어 소규모화한 절도사는 중앙 의존적인 존재가 되고, 중앙정부에서 파견하는 관리 및 군대가 점차 지방에 침투하게 되어 중앙집권적인 문신관료제도(文臣官僚制度)가 완성되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럴 즈음 후주(後周)의 명군(明君)이라 일컬었던 세종(世宗)에 의해 통일의 기초가 거의 굳혀졌고, 마지막으로 후주의 근위군(近衛軍) 총사령관이었던 조광윤(趙匡胤)이 일어나 송(宋)을 세우고 안일(安逸) 속에 빠져 있던 남당(南唐)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병합해서 통일을 완성하였다. 문화적으로 이 시대에는 촉(蜀)의 인쇄술, 문학에서의 사(詞), 회화(繪畵)에서의 수묵화(水墨畵) 등 송문화의 기초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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