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아 학파

엘레아 학파

[ Eleatic School ]

요약 기원전 6세기 후반에서 기원전 5세기 사이 이탈리아 남부 엘레아를 중심으로 나타난 고대 그리스 철학 분파이다. 소크라테스 이전 시기의 주요 철학 사상으로 다양성과 대립성을 부정하고 일원론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본 것이 특징이다.
그리스철학 계통도

그리스철학 계통도

엘레아 학파의 발생

이탈리아 남부의 티레니아(Tyrrhenian) 해안지대에 세워진 고대 식민도시 엘레아(Elea)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엘레아 학파라고 불린다. 상당수의 철학 연구자들은 기원전 6세기 말 활동한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of Colophon)를 엘레아 학파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소아시아 출신의 방랑시인이었던 크세노파네스는 엘레아에 정착해 유일신관을 기반으로 한 철학 사상을 설파했다. 그는 신의 통일성과 최고선(最高善)으로서의 유일성을 주장했고, 여러 신이 존재하며 신들이 인간의 모습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고대 그리스의 전통적인 신관을 정면으로 비난하였다. 그에 따르면 신은 오직 하나만 존재하며 그 형상은 인간이나 동물과 같은 유한한 존재의 모습이 아니다. 일부 학자들은 파르메니데스를 엘레아 학파의 시조로 보기도 한다.

주요 사상과 철학자

크세노파네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적 업적을 뚜렷하게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크세노파네스의 사고에서 기초적인 모습을 보인 엘레아 학파의 사상이 파르메니데스를 통해 한층 체계화된 것은 사실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참된 앎의 길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가상의 거짓된 '밤의 왕국'을 지나 진리와 실재가 있는 '빛의 왕국'으로 나아가는 것에 비유했다. 그는 사유와 언어의 관계를 통해 유일하고 참된 즉, 무한하고 분할할 수 없는 하나의 존재자만이 있음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그의 철학에 따르면 진리는 이성의 인식에서 비롯되며 인식은 존재가 있어야지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사람이 어떤 사물에 대해 생각하거나 말할 때 그 사물은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생각할 때도 이는 현재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가 아니고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성되거나 사라지는 변화는 없으며 모든 것은 유한하고 무시간적이다. 인간의 거짓된 감각이 세상이 계속 생겨나고 움직이고 소멸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뿐 실제로 이성으로 인식하는 모든 것들은 불변하고 항구적이라는 것이다.

한편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에는 논리적 모순들이 존재했는데, 그의 제자 제논(Zenon of Elea)은 논리학적 변증법을 통해 스승의 학설을 지켜내고자 했다. 제논은 귀류법(歸謬法) 즉, 사물의 다원성과 변화가 가진 모순을 거꾸로 드러냄으로써 일원성과 불변에 대한 파르메니데스의 견해를 옹호했다. 이를 제논의 역설(Zenon's paradoxes)이라 부른다.

엘레아 학파의 후반기 주요 철학자는 기원전 5세기 말 사모스 섬의 군사령관이었던 멜리소스(Melissos of Samos)이다. 그는 선대 엘레아 철학자들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또한 실재는 생겨나거나 소멸되지 않는 불변하다는 견해를 받아들이면서도 이는 ‘무한히 크고 영원하다’는 나름의 수정을 가했다.

철학사적 의미

이오니아 지방에서 밀레토스 학파의 자연철학에 기반을 둔 사상이 발달했던 것과 달리, 시칠리아섬을 포함한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신비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철학이 논의의 중심을 이루었다. 특히 엘레아 학파는 논리학을 기반으로 한 형이상학 철학에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서양 철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밀레토스 학파가 하나의 근원 물질이 변화하여 나머지 다양한 사물들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소멸과 생성을 반복한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엘레아 학파는 불변하는 하나의 실재를 주장했다. 또한 감각이나 경험이 아닌 추상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만이 실재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보았다. 엘레아 학파로부터 만들어진 철학적 개념들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 철학자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오늘날까지 심리학, 물리학, 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계속해서 쓰이고 있다. 특히 실재에 관한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은 크리스티안 폰 볼프(Christian von Wolf),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등 후대 철학자들의 존재론 연구의 기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논의 역설적 논증 또한 수세기에 걸쳐 논리학자, 수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