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노파네스

크세노파네스

[ Xenophanes of Colophon ]

요약 고대 그리스의 방랑시인이자 철학자, 종교 사상가이다. 다신론과 의인화된 신(神)이라는 전통적인 그리스 신관을 거부했으며, 파르메니데스의 스승으로 엘레아학파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원어명 Xenophanēs
출생-사망 BC 560/570? ~ BC 470/480?
국적 그리스
활동분야 철학·문학

기원전 6세기 중후반 동서 교류의 중심지였던 소아시아 서쪽 해안의 이오니아 지방 콜로폰(Kolophon)에서 출생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그가 페르시아 군대가 콜로폰 일대를 장악했을 때 고향을 떠나 시칠리아(Sicilia) 섬의 잔크레(Zancle, 오늘날의 메시니아)로 갔다고 추정하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이후 방랑시인이자 철학 사상가로 수십 년 간 지중해 각지를 떠돌다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 식민 도시 엘레아(Elea)에 정착하였다.

크세노파네스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 515?~BC 445?)와 함께 엘레아 학파(Eleatic School)의 시조로 꼽힌다. 와 은 크세노파네스를 파르메니데스의 스승이자 엘레아 학파의 기원으로 진술했으며, 현대 철학 연구자들의 상당수 또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크세노파네스가 남긴 풍자시나 철학적 교훈시 형태의 저작들에도 엘레아 학파와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사상적 형태가 엿보인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신(神)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의 감정들을 느끼고 인간처럼 행동한다. 또한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며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크세노파네스는 이러한 그리스의 전통적 신관을 비난하고 신은 전체이자 하나이며 영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선대의 서사시인 (Hesiodos)와 (Homeros)가 신을 인간적으로 묘사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소, 말, 사자와 같은 동물들이 자신들을 닮은 신을 상상하는 것처럼 인간도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크세노파네스의 비판적 시각은 다양성과 대립성을 부정하고 일원론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려 한 엘레아 학파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크세노파네스를 어느 학파에도 속해있지 않은 철학자로 보기도 한다. 이는 크세노파네스 저작 일부가 엘레아 학파의 사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크세노파네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은 양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일부 학자들은 파르메니데스의 일관적이고 구체적인 철학논리에 비해 크세노파네스의 사상은 기초적이고 원형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보기도 한다. 이처럼 직접적인 연관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크세노파네스가 엘레아 학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크세노파네스는 장수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크세노파네스 자신의 시에는 그가 25살 때부터 92살이 될 때까지 헤라스(그리스)의 땅 여기저기를 방랑하며 사상을 전파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한편, 그는 엘레아 도시의 식민에 관한 긴 시를 썼으며, 올림픽을 사치와 대중의 우매함이 난무하고 신앙의 세속화를 부추기는 그릇된 축전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또한 ‘지혜로운 자만이 지혜로운 자를 발견할 수 있다’, ‘살아있는 것은 죽음으로 가게 되어 있다’, ‘영혼은 프네우마(pneuma, 호흡하는 기운이자 생명의 원리)이다’, ‘참주(독재권을 가진 지배자)를 될 수 있는 대로 멀리하고 그럴 수 없다면 만나서 즐겁게 해주어라’와 같은 흥미로운 격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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