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경삼고

안진경삼고

[ 顔眞卿三稿 ]

요약 중국 당나라 서법(書法)의 대가 안진경(顔眞卿:709∼785)이 남긴 행초서(行草書)의 대표적 필적 세 가지.
구분 행초서의 대표적 필적
시대 중국 당나라
소장 베이징 고궁박물원

안진경은 해서·행서·초서 3체에 모두 독창성과 우수성을 발휘하였으며 그의 행·초서 중에서 특히 유명한 필적은 그의 삼고(三稿)이다. 즉 《제질문고(祭姪文稿)》 《고백부문고(告伯父文稿)》 《쟁좌위고(爭座位稿)》로서 이들 글씨는 모두 글씨를 쓴다는 의식이 없이 졸연간에 휘갈겨 쓴 초고 그대로의 필적이어서 더욱 자연의 묘미가 있고, 진귀하게 여겨지는 글씨이다. 이 삼고 중 《제질문고》와 《고백부문고》는 758년(乾元 1) 이후에 쓴 것이며 《쟁좌위고》는 그로부터 6년 후인 764년(廣德 2)에 쓴 것이다.

① 제질문고:이 법첩(法帖)의 진적(眞蹟)은 송대(宋代) 선화내부(宣和內府)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원대(元代)에 와서 조원례(曹元禮)가 입수, 선우 추(鮮于樞)에게 전해졌고 그후 장안(張晏)이 입수하였다. 명대(明代)에 이르러 은사례(殷司隸)에게 옮겨졌고 다시 몇 사람을 거친 후 그 존재여부가 분명치 않다가 지금은 정운관(停雲館)에서 모각(摹刻)한 것이 전해진다. 진적은 베이징[北京] 고궁박물원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엄주산인고(弇州山人稿)에는 "공의 행압(行押)의 묘가 여일 극치한 것은 이 원고 뿐이다…"라고 칭찬하였다.

② 고백부문고:백부(伯夫)를 제사지낸 제문이며 선화서보(宣和書譜)에도 있고 각본(刻本)으로 전해진다. 엄주산인고에는 "이 법칙은 제질문고와 동법으로 둔좌울발(頓挫鬱勃)은 약간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였다.

③ 쟁좌위고:764년에 안진경이 정양군왕(定襄郡王) 곽영부(郭英父)에게 보낸 편지인데, 그 내용은 좌위(座位:官品)를 논한 것이라서 '논좌위첩(論座位帖)'이라고도 하며 '여곽복야서(與郭僕射書)'라고도 한다. 당시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정양군왕이던 곽영부가 조정의 신임을 기화로 교만·사치하여 조정신하의 서열좌위까지 무시하고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그의 비행을 점잖게 나무라고 반성을 촉구한 것이다.

이 쟁좌위첩의 진적은 송대(宋代)에 장안에 살던 안사문(安師文) 집에서 발견되었는데 《소동파집(蘇東坡集)》에 "안진경공의 다른 글씨에 비해 가장 기발하고 특이하다"라는 평이 실려 있다. 손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쓴 것에 도리어 안진경의 참모습이 나타나 있다.

참조항목

안진경

역참조항목

안진경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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