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숭의전지

연천 숭의전지

[ Sunguijeon Shrine Site, Yeoncheon , 漣川 崇義殿址 ]

요약 조선시대의 사당(祠堂) 건물터. 1971년 12월 2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연천 숭의전지

연천 숭의전지

지정종목 사적
지정일 1971년 12월 29일
소재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숭의전로 382-27 (아미리)
시대 조선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건물지
크기 총 면적 1,785㎡

1971년 12월 2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총 면적은 540평이며, 소재지는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이다.

숭령전(崇靈殿) ·숭인전(崇仁殿) ·숭덕전(崇德殿) ·숭렬전(崇烈殿) 등과 함께 역대 왕조의 시조를 제사지내던 곳이다. .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1397년(태조 6)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嵋山面)에 고려 태조의 (廟)를 모시고, 고려 태조 및 혜종 ·정종 ·광종 ·경종 ·목종 ·현종 등 7왕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제사지냈다. 고려의 귀의군(歸義君) 왕우(王瑀)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으며, 그 아들 상장군 왕조(王祚)에게 귀의군을 습봉(襲封)하여 왕씨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또한 그 도의 관찰사로 하여금 가까운 고을의 장정을 징발하여 태조신성왕묘(太祖神聖王廟)를 짓게 했다. 1399년(정종 1)에는 7왕의 신위를 모두 모시고 제사지냈으며, 1452년(문종 2)에는 이곳을 숭의전이라 이름하고 고려왕조 4왕인 태조, 현종, 문종, 원종의 위패를 모시고 고려 16 공신을 제사 지냈다. 고려 현종의 먼 후손을 공주에서 찾아서 순례(循禮)라는 이름을 내린 후 부사(副使)를 삼아 그 제사를 받들게 하고 토지와 노비를 내렸다. 이것은 조선왕조가 고려 유민들을 모아 왕족들의 불평을 없애려는 하나의 수법이었다.

《오례의》에 따르면 1567년(선조 9) 해당 관청으로 하여금 의장(儀仗)을 갖추고 풍기(豊基) 용천사(龍泉寺)에 있던 고려 태조의 화상을 이곳으로 옮겨오게 하였으며, 1605년에는 경기감사의 계청(啓請)으로 숭의전을 중수한 뒤에 향과 축문을 보내어 제사지내게 하였다. 또 역대 시조묘(始祖廟)의 신좌(神座)는 남향으로 하고 합사(合祀)하는 신위인 부위(附位)는 서향으로 하여 중춘(仲春)과 중추(仲秋)에 제사를 지내는데, 헌관(獻官)과 향의(享儀)는 주현(州縣)에서 사직(社稷)에 제사지내는 것과 같고 축문에는 ‘조선국왕 성(姓) 휘(諱)’라 하였다. 관리로는 사(使:종3품) ·수(守:종4품) ·감(監) ·여릉참봉(麗陵參奉) 등이 있었다.

임진강 중류의 깎아지른 듯한 언덕 위로 남향한 작은 대지에 본래 정전(正殿)을 비롯해 전사청(典祀廳) ·후신청(後臣廳) ·남문 ·협문(夾門) ·수복사(守僕舍) ·곳간 등이 있었으나 6 ·25전쟁 때 모두 불타 없어졌으며, 근래에 정전과 이안청 ·배신청 ·삼문 등이 새로 세워졌다.

참조항목

미산면, 사당

역참조항목

여조왕릉등록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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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동영상

연천 숭의전지 연천군의 고려시대 왕과 공신들을 추모하던 사당이 있던 곳 사적 제223호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의 숭의전이 있던 자리로 조선 건국 후 고려의 왕들과 공신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진 사당이 있던 곳이다.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없어졌으며 1973년 다시 지어졌다. 숭의전은 불에 타 없어지기전 정전, 전사청, 후신청, 이안청, 남문, 협문, 수복사 등 18칸 건물의 큰 규모였으나 현재는 정전, 이안청, 배신청, 전사청, 양암재와 삼문 등이 세워져 있다. 조선왕조는 당시 숭의전 건물의 관리를 고려왕조의 후손에게 맡김으로써 고려멸망 후 조선을 거부하던 고려시대 왕씨 문중과 고려 유민들의 불평을 없애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