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형
[ 宋世珩 ]
- 요약
조선 중기 문신. 보익공신 3등에 책록되고 이조판서 때 승려 보우의 처벌을 상소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안로가 실각되자 비로소 중용되어 응교에 올랐고 이황과 함께 조광조의 신원을 상소했으며 부제학이 되자 다시 조광조의 신원을 상소했다.
출생-사망 | ? ~ 1553 |
---|---|
본관 | 여산(礪山) |
자 | 헌숙(獻叔) |
호 | 반곡(盤谷) |
주요수상 | 위사공신(衛社功臣) 3등 |
본관 여산(礪山). 자 헌숙(獻叔). 호 반곡(盤谷). 1529년(중종 24) 진사로서 시폐(時弊)를 상소했으며 1532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주서(注書)가 되었으나 김안로(金安老) 일당의 모함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기 전 중종의 사부(師傅)였기 때문에 화를 면했다. 김안로가 실각되자 비로소 중용되어 응교에 올랐고 이황(李滉)과 함께 조광조(趙光祖)의 신원(伸寃)을 상소했으며 부제학(副提學)이 되자 다시 조광조의 신원을 상소했다. 1545년(명종 즉위) 보익공신(保翼功臣) 3등에 책록되고 이조판서 때 승려 보우(普雨)의 처벌을 상소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