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산문

성주산문

[ 聖住山門 ]

요약 통일신라 말 무염(無染)이 충남 보령시 성주사(聖住寺)에 개창한 산문.

구(九)산문의 하나로서, 2,000여 명이라는 당대 최대의 제자를 배출하였다. 제자로 대통·심광(深光)·자인(慈忍)·여엄이 있고, 심광의 제자에 현휘가 있다. 뒤에 산 이름이 산문 이름이 되어 숭엄산문(崇嚴山門)으로, 다시 숭암산(崇巖山)으로, 숭암산에서 성주산으로 되었다. 왕위 쟁탈전에서 패한 왕자 김흔의 시주를 받아 백제 오합사(烏合寺) 터에 성주사를 세운 무염은 충북 영동군 영각산사의 심광, 도담선원의 자인, 경기도 양평군 사나선원의 여엄, 충청북도 월악산 월광사의 대통을 배출하였다.

심광의 제자 현휘는 충북 충주시 정토사에 자리하였다. 선종이 교종을 부정한 전형적 예로 무염의 '무설토(無舌土)'론을 주목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 자료의 시간성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이다. 400여 년 뒤의 기록 《선문보장록》에는 교종에 대한 선종의 절대적 우위를 설명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보다 가까운 60여 년 뒤에 쓰여진 《조당집》에서는 선법 자체에 있는 상대적인 것을 뛰어넘은 절대적 경지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선교의 비교에 대한 물음에, "같다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고, 다르다는 주장도 그르다고 할 수 없다. 좌선하여 번뇌의 흐름을 그치게 하는 것이 승려의 본색일 뿐"이라고 대답한다.

성주산문 본문 이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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