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쉬안화이

성쉬안화이

[ 盛宣懷(성선회) ]

요약 중국 청나라 말기의 대표적 관료자본가. 양무운동 추진자의 한 사람으로 우전·해운·철도 관계의 요직을 역임했다. 은행 ·방적 ·철강업 분야의 기업가로 화중 재계의 최고 실력자가 되고 양무운동에 참여해 관계에서 출세, 재산을 모은 전형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출생-사망 1844 ~ 1916
행손(杏蓀) ·유훈(幼勛)
차기(次沂)·우재(愚齋)
국적 중국 청(淸)
출생지 중국 장쑤성[江蘇省] 우진[武進]

자 행손(杏蓀) ·유훈(幼勛). 호 차기(次沂) ·우재(愚齋). 장쑤성[江蘇省] 우진[武進] 출생. 양무운동(洋務運動) 추진자의 한 사람이다.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고 돈을 바쳐 이홍장(李鴻章)의 보호하에 우전(郵電) ·해운 ·철도 관계의 요직을 역임하여, 경제관료 ·재계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홍장이 죽은 뒤에는 그를 대신하여 장지동(張之洞)과 손을 잡고 정계에 진출, 위안스카이[袁世凱]와 대립하였다. 그 뒤 관계를 떠나 실업계에 들어가 은행 ·방적 ·철강업 분야의 기업가로서 화중(華中) 재계의 최고 실력자가 되었다.

1911년 다시 정계에 들어가 우전부대신(郵傳部大臣)이 되어 외국 차관에 의한 철도의 국유화와 청조의 세력회복을 꾀하였으나, 향신(鄕紳)들의 맹렬한 반대를 받았다. 그 반대가 도화선이 되어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실각하여 한때 일본에 망명하였고, 청나라는 멸망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본의 후원도 있었으므로 실업계에 은연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양무운동에 참여하여 관계에서 출세, 재산을 모은 전형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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