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이관

산하이관

[ Shanhaiguan , 山海關(산해관), 山海关 ]

요약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친황다오[秦皇島]에 있는 구(區)로 교통·군사상의 요지이다.
산하이관

산하이관

행정적으로는 친황다오시[秦皇島市]에 속하며, 둥베이[東北:만주] 방면과의 연안 육상교통로의 관문이다. 위관[楡關]이라고도 하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지이다.

북서쪽으로는 러산산맥[燕山山脈], 동쪽으로는 보하이만[渤海灣]에 접해 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4km 되는 곳이 난하이커우관[南海口關:老龍頭]으로 만리장성(萬里長城)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북제(北齊) 때 이루어진 것이다.
산하이관성 동쪽에는 만리장성 동문성루에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 씌어진 현판이 걸려 있다. 만리장성 동쪽 끝 시작지점으로 예로부터 자주 싸움터가 되어왔다.

특히 명나라 말(末) 이자성에 의해 북경이 위협을 받게되자 산해관을 지키고 있던 오삼계가 50만 대군을 이끌고 북경으로 진군하였다. 하지만 이자성에 의해 북경이 이미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삼계는 다시 산해관으로 들어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북경을 함락한 이자성이 오삼계의 아버지와 애첩 진원원(陳圓圓)을 잡아가자 오삼계는 청나라에 협조하게 된다. 오삼계는 이자성을 물리치기 위해 청나라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하고 철옹성인 산해관을 문을 청군에게 열어주었다. 북경을 정복한 청나라는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이후 오삼계의 군대도 청나라 군대에 괴멸되었다.

산하이관이란 지명은 14세기 초 명대(明代)에 성을 쌓고 산해위(山海衛)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킨 데서 유래되었으며, 산과 바다 사이에 있는 관[關]이라는 뜻이다. 일찍이 수(隋)·당대(唐代)에는 임유관(臨制  關), 요(遼)·금대(金代)에는 천민현(遷民縣)·천민진(遷民鎭) 등으로 불렸다. 수(隋)나라 때 임유관(臨制  關)이라 일컬었지만 현재보다 약간 서쪽에 위치하였고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은 11세기 초 요(療)나라 때이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화베이[華北]와 화둥[華東]의 중요한 군사요지였다.

현재 징산[京山]·선산[瀋山] 두 철도의 접속지로서 교통상 요지였으며, 또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교량공장(橋梁工場)이 있어, 황허철교[黃河鐵橋]·한수이대교[漢水大橋] 등 중국의 유명한 철교를 제작하였다. 부근에 만리장성 전설에 관한 유적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