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이관 청하이러우

산하이관 청하이러우

[ 山海關 澄海樓(산해관징해루) ]

요약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친황다오시[秦皇島市]의 산하이관구[山海關區]에 있는 누각.

즈성러우[知聖樓]라고도 한다. 산하이관은 예로부터 중국의 군사 요충지로 중시된 곳으로, 남쪽으로 약 4㎞ 떨어진 곳에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라오룽터우[老龍頭]가 있다. 라오룽터우는 명나라 만력제(萬曆帝) 때인 1579년 축조되었는데, 만리장성이 구불구불 뻗은 모습이 마치 거대한 용처럼 보이는 데서 붙여진 명칭이다. 청하이러우는 라오룽터우가 건설된 직후에 닝하이성[寧海城]과 함께 축조되었다.

닝하이성은 라오룽터우 북쪽에 잇닿아 둘레 500m, 높이 약 7m로 축조되었으며, 서쪽과 북쪽에 성문을 설치하였다. 청하이러우는 관해정(觀海亭)의 유적지에 높이 9m, 너비 8m, 안길이는6m로 축조되었다. 이후 청나라 강희제(康熙帝)와 건륭제(乾隆帝) 때 복구공사가 여러 차례 이루어졌고, 벽면에 와비(卧碑)를 매립하였다. 처마 밑에는 명나라 대학사 손승종(孫承宗)과 청나라 건륭제의 친필 현판, 주련 등이 걸려 있다.

청하이러우와 닝하이성은 지세가 험한 전략적 요충지에 축조되어 병사 주둔지로 이용되었으며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하였다. 청나라 광서제(光緖帝) 때인 1900년 8국 연합군이 침략하여 닝하이성을 점령한 뒤 징하리러우와 다른 건축물들을 소각하였으며, 영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일본 등 5개국 군대가 주둔하였다. 지금도 영국 대포 등이 당시의 침략 증거로 남아 있다.

현존하는 청하이러우는 당시 훼손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라오룽터우 북쪽에 위치하여 바닷가쪽으로 만리장성과 이어지는데, 해변에 우뚝 솟아 기세가 웅장하다. 누각은 겹처마 헐산식(歇山式) 구조이며, 지붕에는 회색 기와를 얹었다. 2층의 4면에 회랑을 설치하여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으며, 옌산[燕山]으로 구불구불 뻗어가는 만리장성이 굽어보여 장관을 이룬다. 근처 해변가에는 '천개해악(天開海岳)'이라고 새겨진 높이 3m, 너비 1m의 비석이 있는데, 명나라 말기 왜구를 물리는 데 큰 공을 세운 척계광(戚繼光)의 친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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