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2세

빌헬름 2세

[ Wilhelm II ]

요약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왕(재위 1888~1918).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도모하는 세계정책을 취했으나 이를 수행할 때의 독선적·단견적인 행동은 독일을 국제적으로 고립시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끄는 대독 포위망을 만들게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본부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본부

출생-사망 1859.1.27 ~ 1941.6.4
국적/왕조 독일
재위기간 1888년~1918년
별칭 카이저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독일 포츠담

포츠담에서 태어났다. 보통 카이저라고 한다. 프리드리히 3세의 장남이다. 1877∼1879년 본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1879년 이후 육군에 근무하였다. 1888년 황제에 즉위하고, 얼마 안 되어 총리 비스마르크를 파면하였다. 그뒤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려고 노력하였고, 전제적인 경향이 짙어졌다. 비스마르크는 유럽 대륙에서 독일의 지위를 강화시킬 보장정책에 중점을 둔 반면, 그는 해외로 적극적 진출을 도모하는 세계정책을 취하였다. 해외시장의 획득과 아프리카 진출, 그리고 해군의 건설 등에 중점을 두었으나, 이러한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그가 취한 독선적·단견적(短見的)인 행동은 독일을 국제적으로 고립시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끄는 대독 포위망을 만들게 하였다. 즉, 비스마르크 은퇴 후 곧 러시아-프랑스 동맹이 성립되고, 또 1889년 틸피츠를 해군장관으로 등용하면서부터 영국과 독일은 군함건조 경쟁을 벌이기 시작하였으며, 결국 1898∼1902년의 영국과 독일의 동맹교섭은 실패하였다.

한편, 튀르키예와 모로코에 관심을 가지고 바그다드 철도의 부설권을 획득하였으며, 모로코 사건을 2회나 야기시켰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에 대한 3국간섭을 하고, 또 중국의 자오저우만[膠州灣]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군의 최고권력자였으나 실권은 군수뇌부에 맡겨져, 1916년 8월 P.힌덴부르크와 E.루덴도르프가 국내의 독재자가 된 뒤로는 전혀 권력을 쥐지 못하였다. 패전시에는 국내의 지배계급으로부터 퇴위 권유를 받았으나,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의 신봉자인 그는 최후까지 자발적인 퇴위를 거부하였다. 1918년 11월 독일혁명이 일어나자 대전 말기에 국민의 원성을 샀기 때문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퇴위하여 네덜란드로 망명하였다. 연합국측은 제1차 세계대전의 개전책임을 그에게 물어, 네덜란드 정부에 그의 신병인도를 요구하였으나 거절되었다. 이후 그는 네덜란드에 정착하여 저술에 종사하였다. 저서에 《사건과 인물, 1878∼1918》(1922)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