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

비류

[ 沸流 ]

요약 전설 속의 인물로서,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주몽(朱蒙)의 아들이자 백제의 건국시조인 온조(溫祚)의 형으로 전한다.
출생-사망 ? ~ BC 18?

《삼국사기》에는 그의 행적에 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야기가 기재되어 있다. 그중 하나에 따르면, 비류는 북부여(北扶餘)출신의 주몽과 졸본부여(卒本扶餘)왕의 둘째 딸 사이에서 태어나 아우인 온조와 함께 자랐는데, 어느날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 유리(琉璃)가 와서 태자가 되자 온조와 함께 따르는 신하들을 거느리고 한강유역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신하들이 모두 한강 남쪽에 자리 잡자 권하고 아우인 온조도 그 말에 따라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에 자리 잡고 싶어했으나, 비류는 바닷가에서 살고 싶어해 백성을 나눠 미추홀(彌鄒忽)로 가서 살았는데,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자신이 거느린 백성은 편히 살지 못하는 반면 온조의 백성들은 편히 살게 되자 부끄럽게 여겨 후회하다 죽었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비류는 졸본사람 우태(優台)와 소서노(召西奴) 사이에서 태어나 아우 온조와 함께 자랐으며, 아버지 우태가 죽은 뒤 어머니 소서노가 주몽과 재혼하였는데, 주몽이 부여에서 낳은 아들인 유유(孺留)를 태자로 삼고 왕위를 잇게 하였다. 이에 비류는 아우인 온조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패수(浿水)와 대수(帶水)를 건너 미추홀로 왔으며, 그곳에서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두 가지 이야기 중 널리 알려진 것은 첫 번째 이야기이다. 그래서 비류가 죽자 비류의 백성들이 모두 온조에게로 왔고, 이에 온조가 서기전 18년에 백제를 세웠다는 이야기에 착안해 비류가 서기전 18년에 죽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을 빗댄 건국설화이므로 비류와 온조를 개인이 아닌 집단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며, 비류집단과 온조집단의 경쟁에서 온조집단이 승리했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다. 또, 비류가 부여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해 비류의 성씨는 해(解)씨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삼국유사》 등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의 왕실 성씨는 원래 해(解)씨였다가 나중에 부여(扶餘)씨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학자들 중에는 비류집단을 해씨, 온조집단을 부여씨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카테고리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