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 Buncheong Placenta Jars with Stamped Chrysanthemum Design , 粉靑沙器 印花菊花文 胎壺 ]

요약 조선시대(15세기)에 만들어진 분청사기 항아리. 1974년 7월 9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지정종목 국보
지정일 1974년 7월 9일
소장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고려대학교박물관 (안암동5가,고려대학교안암캠퍼스(인문사회계))
시대 조선
종류/분류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분청
크기 높이 42.8cm, 입지름 26.5cm, 밑지름 27.6cm

1974년 7월 9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높이 42.8cm, 입지름 26.5cm, 밑지름 27.6cm이며,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70년 고려대학교 구내에서 건축공사를 하던 중에 발견된 유물로서 출토 위치가 뚜렷하고 안팎 두 개의 항아리를 갖춘 귀중한 항아리이다. 발견 당시 큰 항아리의 내부에 있는 항아리는 짚으로 짠 고운 망태기에 넣어져 있었으며, 주위에는 고운 흙이 2/3쯤 차 있었다. 큰 항아리는 형태가 풍만하나 내부의 작은 항아리는 홀쭉하며 만든 방식은 같다.

그릇 표면에 새긴 무늬를 보면 뚜껑에는 낮은 꼭지를 중심으로 국화꽃잎무늬띠·파도무늬띠·완자무늬띠를 차례로 배치하여 전체를 메우고, 큰 항아리는 어깨에서 위로부터 완자무늬띠·연꽃잎무늬띠·국화꽃잎무늬띠를 배치하여 다시 큼직한 꽃잎 속에 점렬(點列)무늬를 채우고 그 밑의 전면에는 국화꽃으로 가득 채워 맨 밑에 중복된 연화(蓮花)무늬를 그려 그릇 표면 전면을 장식하였다. 유약은 담청(淡靑)을 머금은 회색빛 또는 백색으로 전형적인 분청유(粉靑釉)이다. 이와 같은 분청사기 파편은 전라남도 광주시 충효동 도요지의 분청사기 가마에서 수집된 것이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초부터 왕실에서 태어난 태아의 태를 항아리에 넣어 산봉우리에 안치하는 풍속이 후기까지 계속되었으며, 이에 사용한 태항아리는 15세기 중엽까지 분청사기를 사용하였음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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