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성회

북성회

[ 北星會 ]

요약 1923년 1월 일본 도쿄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조직한 사회주의 운동단체.
구분 사회주의 운동단체
설립일 1923 1월 15일
설립목적 민족 독립과 사회주의 사상 보급
주요활동/업무 기관지 《대중시보(大衆時報)》 《전진(前進)》 발간, 국내 각 지역 순회 강연

도쿄 유학생 사회주의 단체인 흑도회(黑濤會)에서 갈라진 공산주의김약수(金若水) ·김종범(金鍾範) ·송봉우(宋奉瑀)·변희용(卞熙鎔) ·이여성(李如星) 등이 중심이 되어 1923년에 조직한 사회주의 단체다.

주요 강령은 한국과 일본 프롤레타리아의 결합, 재일조선인노동자의 단일조합 창설이며, 기관지 《척후대(斥候隊)》《대중시보(大衆時報)》 《전진(前進)》을 발행해 민족의 독립과 사회주의 사상을 보급하였다.

북성회 주류파는 국내에 신사상을 보급하기 위해 일본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귀국, 순회 강연회를 개최하던 중 서울청년회와 마찰을 빚어 낙양관사건(洛陽館事件)을 촉발하기도 하였고, 한국과 일본 노동운동의 결합을 꾀하는 한편, 노동운동 지도자 육성에도 힘썼다.

1923년 11월에는 여러 민족단체와 협의해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한 일본정부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국내에서는 김찬(金燦) ·권오설(權五卨) ·안기성(安基成) ·홍명희(洪命熹) ·박헌영(朴憲永) 등이 중심이 되어 화요회(火曜會)를 조직, 뒤에 제1차 조선공산당과 제2차 조선공산당 조직에 참여한다.

김약수 ·송봉우(宋奉瑀) ·김종범 등은 조선 내에서 북풍회(北風會)를 조직해 민족해방을 위한 민족협동전선 조직을 추구, 뒤에 제3차 조선공산당조직에서 주도권을 잡는 기틀을 마련하였고, 일본에 남아 있던 북성회 회원들은 대중 위주의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조직을 정비, 북성회를 해산하고 일월회(一月會)를 조직하는 등 한국 초기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1926년 북성회 계통의 여러 단체는 조선노동당 ·무산자동맹 등과 합작, 정우회(正友會)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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