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봉 왕가

부르봉 왕가

[ House of Bourbon ]

요약 프랑스의 왕조(1589∼1792, 1814∼30).
부르봉왕가 가계도

부르봉왕가 가계도

왕조의 명칭은 부르봉 라르샹보시(市)에서 유래한다. 원래는 소영주(小領主)였으나 1272년 프랑스왕 루이 9세의 여섯번째 아들인 로베르와 부르봉가(家)의 베아트리스가 결혼을 함으로써 그들의 소생인 아들 루이 1세가 공작(公爵)이 되었다. 1488년 장 2세가 죽음으로써 그의 동생 피에르 2세가 영지를 계승하여 루이 11세의 왕녀 안느와 결혼하였다. 이들 사이의 딸인 수잔은 1505년 몽팡시가(家)의 샤를과 양자(養子) 결혼을 하였으며, 이 샤를은 원수(元帥)로서 프랑수아 1세의 휘하에서 이탈리아 전쟁 때에 활약을 하였다.

샤를의 사후에 다시 그 직계가 단절되었으나 그의 일족인 앙트완이 프랑수아 1세의 누이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에프타메롱의 저자)의 아들 잔 달브레와 결혼함으로써 부르봉가를 재흥케 하였다. 이들의 아들인 앙리 드 나바르가 바로 신교도의 수령으로서 1589년 프랑스의 왕위에 오른 앙리 4세이다. 이 이후 루이 13세, 루이 14세로 왕위가 계속되어 프랑스 절대왕정의 황금시대를 이룩하였다. 루이 14세에 이어 루이 15세, 루이 16세가 잇달아 왕위에 올랐으나 1792년 혁명으로 폐위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몰락 후에 루이 16세의 동생이 루이 18세로 복위되었고, 다음 샤를 10세(부르봉왕조 최후의 왕)가 1830년의 7월혁명에 의해 퇴위할 때까지 부르봉왕조의 왕위가 지속되었다.

7월왕정 이후에도 샤를 10세의 가계(家系)는 계속되어 그의 손자인 샹보르백작은 파리코뮌 이후 국왕으로 추대되었으나, 스스로 사양하여 83년 그의 죽음과 함께 정통(正統)은 단절되었다. 더욱 부르봉가는 앙리 4세 이래 여러 외국의 왕가와 혈연관계가 깊었는데, 특히 에스파냐와는 루이 14세의 손자인 앙주공(公)이 1700년에 왕위를 계승(에스파냐 왕 펠리프 5세)한 관계로 프랑스에서 왕정이 폐지된 이후에도 부르봉왕조는 계속되었다. 1931년에 공화(共和)혁명으로 인하여 퇴위한 알폰소 13세가 최후의 왕이다. 이탈리아에서의 부르봉가는 나폴리왕위를 계승하여 이탈리아 통일 때까지 계속되었다.

부르봉 왕가 본문 이미지 1 


루이 필리프 1세샤를 10세루이 18세루이 16세루이 15세루이 14세루이 13세앙리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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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3세

루이 13세 샹파뉴 작품.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