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반동

봉건반동

[ feudal reaction , 封建反動 ]

요약 중세 영주층이 봉건제의 위기를 탈피하고자 농민에 대해 지배,착취하였던 행동.

14∼16세기의 유럽에서 교환경제(상품 ·화폐 경제)의 전개와 농민경제의 상대적 자립화로 재정적으로 궁핍해진 영주층이, 봉건제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농민에 대한 지배 ·착취를 강화하였던 행동이다. 이 위기의 원인이나 양상은 한결같지 않으며, 따라서 봉건반동의 양상도 동일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영주제는 자연경제를 기초로 하고 있었는데, 교환경제가 농촌에 침투함에 따라서 농민층 사이에 빈부의 계층분화가 생겼으며, 영주는 농민층을 예전처럼 획일적으로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부농은 차차 영주의 지배에서 독립하고, 빈농은 지대(地代)의 부담능력을 상실해갔다. 그리하여 반동은 흔히 영주의 힘만으로는 관철되지 않아, 왕권의 힘을 빌리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절대왕정(絶對王政)의 성립이 촉진되었다.

영국에서는 봉건반동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으며, 독립자영농민(yeoman)의 성장으로 영주제가 비교적 일찍 해체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일반적으로 부역(賦役), 즉 노동지대(勞動地代)는 쇠퇴하였으나, 대신 생산물지대가 오히려 강화되었으며, 농노제 또는 영주제는 프랑스혁명 때까지 존속되었다.

또 독일, 특히 엘베강(江) 동쪽에서는 반대로 부역이 강화되고 농노제가 재편성되어 이른바 재판(再版) 농노제가 이루어져, 근대화가 지연되는 원인이 되었다.

대체로 봉건반동은 봉건적 위기에 대한 영주층의 대응책이었으며, 단순한 반동이 아니었다. 이는 봉건제의 해체를 지연시키는 일면과, 해체를 촉진하는 일면을 모두 가지고 있었으며, 결국 절대왕정은 반동작용과 해체작용의 합성물로서 생겨났다.

역참조항목

교환경제, 요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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