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두

복두

[ 幞頭 ]

요약 관(冠)의 하나.
평각복두

평각복두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썼는데, 주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홍패(紅牌)를 받을 때 썼다. 중국 후주(後周) 때부터 쓰기 시작하였다 하며, 당시에는 부드러운 비단으로 만들고 각(脚)을 늘어뜨린 것이었다. 그후 당나라 때에는 나(羅)를 사용해서 관과 같이 만들어 왕을 비롯하여 신하와 백성들까지 착용하였다. 이것은 4가닥의 끈을 달아 2가닥은 머리 뒤로 매고 나머지 2가닥은 턱 아래에 매어 벗겨지지 않도록 하였으며, 일이 없을 때는 머리 위로 올려 앞으로 매게 되어 있다. 오대(五代)에는 각을 빳빳하게 만들어 옆으로 뻗치게 하였다.

송나라 때는 복두를 가장 많이 사용해 왕과 신하 모두 평각복두(平脚幞頭)를 착용하였고, 수레[輿]를 탈 때에는 각을 위로 올려 쓰기도 하였다.평각복두 외에 국각복두(局脚幞頭) ·교각복두(交脚幞頭) ·조천복두(朝天幞頭) ·순풍복두(順風幞頭)가 있었다. 원(元)과 명(明)에서도 송나라의 것과 비슷한 것이 사용되었다. 한국의 경우는 신라 때에도 사용되었으나 중국에서 언제 들어왔는지는 확실하지 않고 다만 649년(진덕 3)에 중국의 제도를 모방한 의관제정(衣冠制定)이 있었으므로 이때 복두가 들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왕과 백성이 모두 복두를 썼다는 기록이 <흥덕왕복식금제(興德王服飾禁制)>에 있다. 고려시대에도 송나라의 평각복두를 착용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高麗史)》와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있는데, 왕을 비롯하여 신하 ·노복 ·군졸들이 모두 착용하였으며, 특히 광종(光宗) 이후에는 과거급제자가 홍패를 받을 때 착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왕을 호위하는 위장(衛仗)들의 복두는 매우 화려하고, 그 종류도 많아 전각복두(展脚幞頭) ·금화곡각복두(金花曲脚幞頭) ·권착복두(圈着幞頭) ·상절각복두(上折脚幞頭) 등이 있었다.

조선 초기에는 공복(公服)에 복두를 신들과 악공들이 착용하였으나, 정묘호란 ·병자호란 이후에는 차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진사에 급제한 사람이나 악공들만이 착용하였다. 교각복두 ·연각복두(軟脚幞頭) ·모라복두(冒羅幞頭)가 있었고, 악공은 장식을 한 족화복두(族花幞頭) ·화화복두(畵花幞頭)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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