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와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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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甁窩文集 ]

요약 조선 후기 문신 이형상(李衡祥:1653∼1733)의 시문집.
구분 시문집, 목판본
저자 이형상
시대 1774년

목판본, 18권 9책이다. 1774년(영조 50) 손자 만송(晩松)이 편집, 간행하였다. 남인채제공(蔡濟恭)·이상정(李象靖)이 서문과 발문을 붙였다. 시의 특징은 악부(樂府)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서, 분량이 72편에 달할 뿐 아니라 오음(五音)을 잘 맞추면 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은 아악(雅樂)이 없어 악부를 지을 수 없다는 견해를 반박하였다.

〈호파곡(浩皤曲)〉 16수는 한글 시조를 형식적 특징을 살려 번역한 것이다. 〈잠(箴)〉에는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은 물론 남에게 써준 것과 왕명을 받아 쓴 것도 있다. 명(銘)은 제주도의 적송(赤松)·글씨·정자 등에 부친 것들이 있는데, 특히 〈만고장명(萬古藏銘)〉에서는 허목(許穆)의 글씨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다.

상소문과 편지는 정치 문제에 비해 《강도지(江都誌)》를 지어 바친다든가, 천문·지리·아악을 논한 것 등 저자의 다양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많다. 그러나 저자가 여러 곳의 수령을 지낸 만큼, 동래의 군비 강화와 일본 사자(使者)에 대한 정책을 논한 것, 경상도 성주의 전정(田政)을 개혁하여야 한다는 것, 경주의 미신행위를 금지하여야 한다는 것 등 행정에 대한 것도 많이 있다. 특히 제주목사를 지내면서 제주도의 풍속과 통치를 논한 여러 형식의 글이 많은데, 그곳의 특징을 이해하기보다는 몽매한 풍속을 타파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자기 소유의 노비를 해방시킨 데 대한 기록도 특이하다.

영남의 남인 학자인 장현광(張顯光)을 모신 곳을 찾아간 기록인 〈입암유산록(立岩遊山錄)〉에 드러나듯이 수록된 글의 일반적인 배경은 저자가 산 영남과 그곳의 남인 인물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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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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