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와요

별와요

[ 別瓦窯 ]

요약 조선시대 민수용(民需用) 기와를 굽기 위해 만든 기관.

태종이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자, 승려 해선(海宣)이 “새 왕도(王都)의 크고 작은 집이 모두 지붕이 허술하여 미관상 좋지 못할 뿐 아니라, 화재 위험도 크니 대량의 기와를 구워 헐값으로 공급하면 10년이 안 가서 모든 민가가 기와집으로 바뀔 것이라”고 건의한 데 따라, 1406년(태종 6) 와서(瓦署)와는 별도로 설치하였다. 의정부참지사 이응(李膺)을 제조(提調)로, 이사영(李士潁)을 부제조로, 해선을 화주(化主)로 임명하고, 충청·강원·경상·경기·풍해(豊海)·전라 각 도에서 중 270명과 와장(瓦匠) 40명을 징발하여, 대대적인 기와 제조사업을 벌였다. 1426년(세종 8) 8월 서울 복판의 관서와 민가 200여 채를 불태운 큰 화재를 겪고 나서는, 기근으로 인한 수요감퇴로 폐지된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호조에 명하여 재력이 부족한 3,676호에는 반액, 빈궁한 집에는 무상으로 대주는 등 5,700여 호의 지붕을 기와로 덮게 하였다. 이는 총가호 1만 6900여 호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참조항목

기와, 와당, 이응

역참조항목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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