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동서원

백록동서원

[ 白鹿洞書院 ]

요약 송(宋)나라의 학교.

지금의 장시성[江西省] 싱쯔현[星子縣] 북쪽의 여산오로봉(廬山五老峯) 밑에 있었는데, 이곳은 당대(唐代)의 이발(李渤)이 은거하여 백록(白鹿)을 기르면서 독서를 하여 즐거운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백록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5대(代) 10국(國) 때에는 이곳에 학교를 설립하여 여산국학(廬山國學)이라 하였으며, 송대에는 이 서원이 건립되어 지방자제를 교육하였다. 남송의 주희(朱熹)가 남강군(南康軍)의 지사(知事)가 되었을 때 재흥시켜서 스스로 백록동서원 원장이 되어,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중용》을 학생에게 강의하는 동시에 천하의 학자를 초청하는 등 유교(儒敎)의 이상 실현에 힘썼다. 따라서 이 백록동서원은 점차 유명해져 천하 제일의 학교로 되었다.

한국에서는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豊基郡守) 주세붕(周世鵬)이 고려시대의 학자 안향(安珦)을 기리기 위하여, 백록동서원을 본떠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紹修書院)을 세웠는데, 이것이 한국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또 1588년(선조 21) 황해도 황주군 황주읍 예동에 주자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백록동을 세우고, 1661년(현종 2) 사액(賜額)을 받았다. 그뒤 김굉필(金宏弼) ·이이(李珥)를 배향하였으나,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카테고리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