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필현

박필현

[ 朴弼顯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의금부도사, 태인현감 등을 지냈고 이인좌를 만나 반란의 뜻을 품어 밀풍군 탄을 추대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 역모가 드러나자 태인에서 기병하여 전주로 쳐들어갔으나 실패해 사로잡혀 참수되었다.
출생-사망 1680 ~ 1728
본관 반남

본관 반남이다. 1723년(경종 3) 생원시에 수석으로 합격, 의금부도사(都事)에 임명되었다. 간신의 아들이라는 대간의 탄핵으로, 태인현감(泰仁縣監)으로 좌천되었다. 1727년 역적 김일경(金一鏡)을 추종하였다는 죄목 등으로, 필우(弼禹)·필기(弼夔)·필룡(弼龍) 4형제 모두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앞서 1726년 이인좌(李麟佐)를 만나 반란의 뜻을 품었으며, 1728년(영조 4) 이인좌·김영해(金領海)·목시룡(睦時龍) 등이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추대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

최규서(崔奎瑞)의 고변으로 역모가 드러나자 이인좌가 청주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그는 태인(泰仁)에서 기병(起兵)하여 전주로 쳐들어갔으나, 전주감사 정사효(鄭思孝)의 돌변으로 실패하였다. 아들과 함께 상주에 숨었다가, 사로잡혀 참수되었다. 죽기 전에 이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사대부는 없다고 말하여 물의를 일으켰다. 1908년(순종 2)에 복관되었다.

역참조항목

최규서

카테고리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