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생광

박생광

[ 朴生光 ]

요약 한국의 화가로 ‘진채화의 거장’으로 불린다. 단색조의 모노크롬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1980년대 초반 민화를 비롯하여 불화, 무속화 등에서 발견한 토속적인 이미지들을 단청의 강렬한 빛깔로 화폭에 담아 당시 화단에 새로운 바람과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채색화로서 민족회화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생-사망 1904.8.4 ~ 1985.7.18
내고(乃古), 그대로
국적 한국
활동분야 회화
출생지 경남 진주
주요수상 제17회 중앙미술대상 예술부문 장려상(1981)
주요작품 《토함산 해돋이》(1981), 《토기》(1982), 《무당 1》(1983), 《십장생도 10》(1983), 《청담대종사》(1983), 《명성황후》(1983), 《전봉준》(1985)

박생광(朴生光)은 190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진주보통학교와 진주농업학교를 다녔으며, 이때 뒤에 한국 불교계에 거목이 된 청담 스님을 만나 인연을 맺었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시립회화전문학교(지금의 교토예술대학)에서 이른바 일본 화단의 근대 교토파라고 불렸던 다케우치 세이호우(竹內炳鳳), 무라카미 가가쿠(村上華岳) 등에게 새로운 감각의 일본화를 배웠다. 이후 오치아이 로우후우(落合朗風)에게 사사했으며, 조선미술전람회, 일본미술원전 등에 출품하여 인정을 받았다.

박생광은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해 고향인 진주로 갔다. 1950년대 후반에는 백양회 등 동양화 단체에 참여했으나 그다지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했다. 당시 화단에서는 반일감정이 강해서 채색화는 일본화풍으로 비춰져 푸대접을 받았다. 그는 그의 삶의 뿌리였던 진주를 떠나 1967년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듬해 홍익대, 경희대 등에 출강하며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이때의 작품은 실험적인 경향이 짙어 새로운 예술세계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1974년 일흔의 나이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77년 서울로 돌아왔다.

박생광은 일본에서 귀국한 후 종전에 쓰던 ‘내고(乃古)’라는 호를 ‘그대로’로 바꾸고, 작품 제작연도를 서기에서 단기로 바꾸어 한글로 표기했다. 이는 우리 것에 대한 강한 애정의 발로이자 민족관의 적극적인 표출이었다. 그는 한국미술의 전통 중에서도 단청이나 민화, 불교의 탱화 등에 관심을 갖고 무속, 불화, 역사화 등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단청의 색채를 연구하면서 굵은 윤곽선으로 형태를 만든 후 채색하는 방법을 배웠고, 민화에서처럼 사실적 비례를 무시하고 대상의 크기를 자유롭게, 공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했다. 또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환상적인 인물 등을 작품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박생광은 1981년 서울 백상기념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 이후 민화적이고 토속적인 한국성, 무속적 주제가 드러나는 이른바 ‘그대로 화풍’을 정립했다. 그해 작품 《토함산 해돋이》가 제17회 중앙미술대상 예술부문 장려상을 받았다. 1982년에는 78세라는 노구를 이끌고 인도 불교유적지 및 힌두 사원 등을 순례하는 한편 인도미술협회와 인도한국대사관 주최로 뉴델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인도 여행 이후 《혜초 스님》, 《청담 대종사》, 《명성황후》, 《전봉준》등을 발표하며 방만한 스케일과 영(靈)과 속(俗), 환영과 실재가 혼재하는 초월적 시공간을 보여주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박생광은 일본화 영향이라는 불명예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민족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예술적 절정을 보였다. 그의 예술세계는 무엇보다 채색화에 기초한 민족회화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점에서 뜻이 깊었다. 전통화단이 수묵 문인화의 세계에 머물렀을 때 그는 채색으로 독특한 시각에 따른 조형어법을 구축했다. 또한 강렬한 원색의 대담한 화면구성과 힘 있는 필획, 면 처리 등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했다.

박생광은 1984년 서울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개인전을 열어 큰 성황을 이뤘다. 1985년에는 파리 그랑팔레 르 살롱전에 특별초대 작가로 선정되었다. 이 전시를 위해 그는 8점의 무속화를 제작하는 등 열의를 불태웠으나 그 해 7월 후두암으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작품세계가 총체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한 계기는 그가 타계한 지 1년 후인 1986년 호암 갤러리에서 있었던 1주기 회고전이었다. 주홍색과 감청색의 대담한 색채, 괴기스러울 정도로 환상적이고 복합적인 분위기를 주는 대작들은 방대한 화면과 그것을 소화해내는 자유분방한 구성, 그리고 역동적인 운율감으로 관람객에게 놀라운 감동과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채색화의 새로운 분기점이 되었다.

주요 작품에는 《반가사유상》(1981), 《토함산 해돋이》(1981), 《토기》(1982), 《무당 1》(1983), 《십장생도 10》(1983), 《혜초 스님》(1983), 《청담대종사》(1983), 《명성황후》(1983), 《무위사의 관음》(1984), 《탈과 거북》(1984), 《범과 모란》(1984), 《전봉준》(1985) 등이 있다.

역참조항목

이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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