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미라보

오노레 미라보

요약 18세기 프랑스혁명 때의 정치가. 제3신분 대표로 국민의회 해산 위기를 열변으로 극복했다. 라파예트와 함께 혁명 초기의 거물로, 파리 시민의 인기를 얻었다. 입헌왕정, 의회주의 건설을 주장했다.《프로이센 왕국론》이 있다.
원어명 Honoré Gabriel Riquetti Comte de Mirabeau
출생-사망 1749.3.9 ~ 1791.4.2
별칭 프로방스의 거화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프랑스 가티네 비뇽
주요저서 《프로이센 왕국론》(1788)

가티네의 비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농주의파의 개명귀족(開明貴族)으로 후작이었다. 18세에 군에 입대하였으나 방탕과 낭비벽이 심했던 탓으로 뱅센감옥에 수감되기도 하였다. 2년여가 지난 후 해외로 도피하여 각지를 유랑할 때 《프로이센 왕국론》(1788)을 저술하여 유명해졌다.

1789년 5월 삼부회제3신분 대표로 출마하고, 6월 23일 궁정이, 삼부회 의원이 구성한 국민의회를 해산시키려 하자 열변을 토하여 위기를 극복하였다. 그후 M.M.라파예트와 함께 혁명 초기의 거물이 되었고, 파리 시민의 인기도 한몸에 받았다.

정치구상으로서는 입헌왕정(立憲王政)의 입장을 끝까지 견지하였다. 혁명을 초기 단계에 정착시켜, 전제정체와 신분제 지배를 타파한 후 착실하게 의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 때문에 점차로 자코뱅당과 결별하고 궁정에 접근하게 되었다. 그가 죽은 후,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매수되었다는 사실이 판명되어 한때는 국민의 신임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