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

무신론

[ atheism , 無神論 ]

요약 신(神)과 같은 초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의 개입을 부정하거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상이나 세계관.

무신론(atheism)은 유신론(theism)과 반대의 개념이다. 유신론은 신(神)과 같은 절대적이고 전능한 존재의 실재를 인정하고 그것이 세상을 직접 주재하고 영향을 끼친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무신론은 신의 개입이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신론은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어서 신의 개념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정의된다. 예컨대 기독교나 유대교처럼 하나의 창조주와 조물주만을 인정하는 유일신 신앙에서는 그러한 신의 존재와 대립하는 다신론(多神論)이나 범신론(汎神論)도 모두 무신론으로 인식된다. 또한 신을 절대적인 능력을 지닌 인격적 존재로 인식하면 그러한 인격신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유교(儒敎)나 불교(佛敎) 등은 모두 무신론에 포함된다. 하지만 신을 초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인 형이상학적 실재를 나타내는 것으로 폭넓게 정의하면 유교나 불교도 유신론에 포함되며 무신론은 초인간적이며 초자연적인 모든 존재의 실재를 부정하는 사상으로 엄격하게 정의된다.

이처럼 무신론은 매우 상대적이고 다의적(多義的)인 개념으로 인간 집단이나 사회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기독교 전통이 강한 서구 사회에서는 절대적 유일신에 대한 신앙을 기준으로 그 밖의 사상적 종교적 전통들이 폭넓게 무신론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반대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형태의 형이상학적이며 초월적인 원리를 배제하는 제한된 의미에서 그 개념이 사용되었다.

어원(語源)에서도 무신론은 차별적이고 상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라틴어에서 무신론을 뜻하는 ‘아테이스무스(atheismus)’는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수호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아테오스(atheos)’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예컨대 아테네 사람들은 자신들이 수호신으로 숭배했던 아테나 여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신이 없는 사람’이란 뜻에서 ‘아테오스(atheos)’나 ‘아테오이(atheoi)’라 불렀다. 로마 시대에는 로마의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기독교인들이 무신론자로 몰려 탄압을 받기도 했다.

무신론과 종교

일반적으로 무신론은 종교와 대립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조물주의 존재나 개입을 부정하는 무신론적 종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불교나 유교, 도교(道敎) 등도 그 창시자에 대한 숭배는 나타나지만 근본 원리에서는 무신론적인 특성을 지닌다. 육사외도(六師外道)에 대한 비판에서 나타나듯이 불교에서는 절대적 조물주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으며, 연기설(緣起說)에 근거해 고정 불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의 원인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일원론적인 세계관이나 세상의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고 하는 결정론적인 인식도 비판한다. “아직 사는 것도 잘 모르겠는데 죽음 다음의 일을 어찌 알겠느냐”는 공자(孔子)의 말에서 나타나듯 유교도 인간 중심의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도교에서 강조하는 도(道)도 자연 속에 내재된 형이상학적인 원리일 뿐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무신론과 특정한 종교를 지니지 않은 무종교(無宗教)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특정한 종교를 지니지 않고도 유신론적인 세계관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유물론(唯物論)과 무신론도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정신이나 의식보다 물질적 관계를 중시하는 유물론이 무신론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물질적 인과 관계를 중심으로 세계의 운동이나 작용을 인식하는 유물론의 관점을 지니면서도 신의 존재와 개입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유신론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는 경우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극적 무신론과 적극적 무신론

무신론은 소극적 무신론과 적극적 무신론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소극적 무신론은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적극적으로 논증하지는 않지만 세상에 대한 신적인 절대적 힘의 개입은 부정하는 태도이고, 적극적 무신론은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논증하는 태도이다.

소극적 무신론은 불가지론(不可知論)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경험적으로 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는 없다는 불가지론은 신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하므로 엄격히 무신론과는 구분된다. 하지만 불가지함을 근거로 자연의 운동과 작용에 대한 인식에서 신의 개입과 영향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유신론과는 대립된다. 신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을 종교적 윤리적 원칙의 근거로 이해한 이신론(理神論)이나 우주 안의 모든 것이 신의 발현이며 신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본 범신론도 신의 존재 자체는 부정하지 않지만 자연에 내재된 원리와 법칙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려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유신론과 대립해 왔다.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적극적 무신론은 고대부터 다양한 사상으로 표현되었다. 고대 인도에서는 석가모니와 동시대의 인물로 이른바 육사외도의 하나인 아지타 케사캄바린(Ajita Kesakambalin)이 신과 같은 초월적인 진리는 없다고 주장하며 쾌락주의의 세계관을 설파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데모크리토스(Demokritos)와 에피쿠로스(Epicouros)가 이와 유사한 주장을 설파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우주의 현상들은 어떤 목적이나 계획이 아니라 원자의 운동에 따른 필연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천둥과 번개와 같은 특별한 자연 현상을 초인간적인 힘의 영향으로 설명하려는 욕망 때문에 신의 존재가 나타났다고 보았다. 에피쿠로스도 데모크리토스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현상들은 궁극적으로는 빈 공간을 움직이는 원자들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온다고 보았고, 죽음은 몸과 영혼의 종말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쾌락과 고통만이 무엇이 좋고 악한지에 대한 척도가 된다고 주장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무신론 사상은 더욱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스스로를 최초의 무신론자라고 부른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돌바크(Paul Henri Dietrich d'Holbach)는 《자연의 체계(Système de la nature)》(1770)에서 종교가 자연과 이성에 모순된 것이라고 비판하며 도덕을 모든 종교적 원리와 구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von Feuerbach)는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1841)에서 인간이 자신의 내적 본성을 외부로 투사(projection)하여 신을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포이어바흐의 사상은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마르크스(Karl Marx), 니체(Friedrich Nietzsche)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마르크스는 신의 존재가 만들어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포이어바흐의 사상을 계승하여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하였고, 니체는 《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1887)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정신구조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질투와 시기심을 나타내는 ‘르상티망(Ressentiment)’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바쿠닌(Mikhail Aleksandrovich Bakunin)도 신이 존재한다는 관념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부정”이라고 비판하였다.

이처럼 현대의 무신론은 인간이 세계의 중심으로 신이나 종교에 근거하지 않고 인간 자신의 주체적인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인간중심주의(人間中心主義)를 특징으로 한다. 특히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실존주의를 “일관된 무신론적인 입장에서 모든 결과를 끄집어내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하며 인간의 실존적 결단과 행동과 책임, 연대성을 강조하였다.